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한파로 겨울나기가 무척 힘드시죠? 이렇게 추운 겨울은 진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백두산지역은 거의 영하 40도를 기록했더군요.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한랭전선이 남하해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상기후현상으로 동아시아와 유럽은 50년만의 대 폭설과 추위를 경험하고 있고, 반대로 북미에서는 수십 년 만에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고 하네요.
한때 추운 겨울은 북한에 엄동설한의 겨울나이뿐 아니라 즐거운 먹을거리, 웃음거리도 선사해주었습니다. '평양에 동태 다음에 많은 게 여자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동태는 지나치게 많음의 대명사였습니다.
동태가 차고 넘치는 것은 상식이고, 이에 비할 정도로 평양에 나이찬 처녀들, 여자들이 많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죠. 부모님들이 장가는 언제 갈 거냐고 따질 때 노총각들이 잘 써먹던 방편이기도 합니다.
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이야기 같지만 평양에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습니다. 지금쯤이면 '동태 밸 따기 전투'로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었죠. 하도 많이 잡혀 처치 곤란해 전국적으로 노력을 동원하여 동해바닷가에 가 밸 따기 전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기관이 사회주의경쟁에서 가장 앞섰고, 어느 누가 가장 많이 따고, 등등의 내용들을 방송에서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따라 훈장도 주군 했죠.
덕분에 창란, 명란도 차고 넘쳤습니다. 제가 살던 수도방어사령부 군부대 지휘부에서도 자고 일어나면 동태를 아파트 뒤에 부리고 달아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배급타가라고 외쳤죠.
정말 귀찮았습니다. 베란다, 복도할 것 없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더 건사할 데도 없고, 더구나 추운 겨울 손질하는 것도 지겨웠죠. 그나마 석탄 차에 실려 오지 않은 동태가 차례지면 다행이었습니다.
가정마다 겨울철에 반찬이 없으면 매달아 놓은 동태로 해결하군 했습니다. 그야말로 김치 아니면 동태였죠. 간식도 마른 명태였습니다. 마르는 순서대로 꼬리부터 잘라 먹었고, 어머니들은 눈이 밝아진다고 명태대가리 눈을 키 순서대로 먹이느라 장난이 아니었죠.
가운데 부위는 자식들이 좀 적은 집은 남아 있고, 그렇지 않은 집은 겨울이 가기 전에 마르는 족족 다 없어졌습니다. 명태가 많은 덕분에 간유사탕, 우유공급도 잘 되었습니다. 키 크는 약을 만든다, 어린이들에게 공급한다, 난리가 났었죠.
그리고 북한인민들은 학습시간, 총화시간마다 당과 수령의 현명한 영도와 배려에 대해 칭송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먼 바다 고기, 작은 바다 고기 할 것 없이 빠짐없이 잡을 데 대한' 김일성교시를 달달 외우며 암송하기도 했고요. 어업을 다각화, 다양화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이 훌륭한 결실을 맺는다고 모두들 믿기도 했죠.
그러나 요즘은 동태를 보고 죽재도 없다고들 합니다. 지구온난화로 어류분포가 달라진 자연적 요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하게는 중앙계획화 경제가 망가져 바다에 나갈 기름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낡은 배, 그물도 문제구요.
궁여지책으로 북한당국은 중국 어선들에 바다를 내 주고 그 대신 밀가루나 강냉이, 고기 몇 마리를 받아 간신히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북한인민들은 이렇게들 말합니다. '공산주의는 벌써 왔다 갔어!'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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