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왕 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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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평양에서 열린 제16차 '4월의 명절료리축전'이 폐막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각 도, 중앙기관, 호텔 등 46개의 기관들이 참가한 이번 경연을 통해 인민들의 식탁과 먹을거리가 더 기름지고 풍성해 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즘은 여름철을 맞아 평양시내 곳곳에 빙수판매대도 설치하고 있다고 하네요.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4.15'를 앞두고 시내 거리에 빙수 판매대를 100개 세운다고 합니다.

옥류관에서는 자라, 연어, 철갑상어, 메추리요리와 같은 특색 있는 별미와 함께 스파게티, 피자, 퐁듀와 같은 외국 요리도 봉사한다니 평양의 메뉴가 많이 다양해는 것 같습니다.

'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 햄버거 가게도 등장했으니 머지않아 북한에서 판매 금지된 미국의 대표음료 '코카콜라,' 담배 '말보로'도 허용되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 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청년들도 자본주의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어볼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산 담배 말보로에 얽힌 사연을 하나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중앙기관의 한 당 비서는 부하직원이 복도에서 말보로 피우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동무는 왜 미 제국주의 담배를 그렇게 좋아하오? 옳지 않소.'

그러자 영리한 부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 비서동지. 오해하지 마시라오. 저는 미국담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불로 태워버리고 있습니다.' 당 비서는 그만해야 입만 쩝 다시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한 대 얻어 피우고 싶어서 말을 붙였었죠.

북한지도부나 인민들이 사랑하는 '미국 산 제품'은 하나 또 있습니다. 바로 미국 돈 '딸라'입니다. 북한의 원화가치가 하도 떨어지다 나니 달러를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큰일 보고 휴지가 없으면 기꺼이 원화로 청결을 지키는 정도니 북한화폐의 가치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인민들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이 있는 100달러 지폐를 '왕 딸라'라고 부르며 좋아합니다. 화폐단위가 최고여서 그런지 화폐교환을 하면서 초상의 얼굴을 크게 해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100달러짜리 지폐가 주머니에 있으면 누구든지 얼굴은 하루 종일 '만 딸라 인상'이 됩니다.

김정일은 인민들보다 달러를 더 좋아합니다. 북한에서는 당의 방침에 따라 2002년부터 국제결제화폐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꿨습니다. 미국의 제재와 재산동결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에서였죠.

그러나 김정일은 당의 방침을 제일 먼저 깼습니다. 대외보험총국이 국가재난을 밑천으로 번 돈 2000만 달러어치를 김정일 생일선물로 외국 은행에서 유로로 인출하려 하자 김정일이 '삐딱해졌습니다.' '유로가 아니라 빠빧한 딸라로 가져 오라우.' 물론 100달러짜리 '왕 딸라'로 같다 바쳤습니다.

달러는 다른 독재자들도 무척 좋아합니다. 당장 쫓겨날 위기에 처한 리비아의 가다피는 무려 170조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170조면 1,500억 달러로 며칠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국가총예산의 3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영국정부는 벌써 수억 파운드의 그의 재산을 동결하였으며 많은 나라들이 자국민을 학살하고 있는 가다피를 징벌하기 위해 이에 합세하고 있습니다.

20년간 필리핀을 통치하다 물러난 독재자 마르코스의 처 이멜다가 1,200켤레의 신발을 대통령궁전에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북한인민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 때문에 '사치의 상징'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합니다. 그리고 나라와 인민의 돈을 도둑질한 독재자들의 말로도 한가지입니다. 쫓겨나든가 아니면 처형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