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위에서 대주면 좋고 안 대주면 자체의 힘으로 한다."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구호입니다. 여기서 위에서 대준다는 말은 중앙 계획화경제 하에서 국가에서 생산에 필요한 자재나 원료, 전기 등을 대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한 영화에는 "위에서 대주면 좋고 안 대주면 더 좋다,"라는 반동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나라의 경제사정이 안 좋고,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 대한 불평, 불만을 나타낸 거죠.
'위에서 대주겠으면 대주고 안 대주겠으면 마음대로 해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는 뉘앙스도 묻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을 한 대상은 영화 속 부정인물로 그려졌지만, 당시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겁니다. 어찌 보면 당의 구호를 야유한 것으로 들렸을 테니까요.
북한에서는 어느 한 순간부터 공개적으로, 특히 김정일이 높게 평가한 영화작품들에서 시대나 현실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하고, 대담하게 비판하는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대주면 좋고 안대주면 자체의 힘으로 한다!"는 북한의 구호와 매우 흡사한 일이 아랫동네에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위에서 대준다는 말은 형편이 좋고, 교육도 잘 받고, 돈도 충분하고, 대중적 인기도 많다는 뜻입니다. 즉, 주객관적 조건을 의미하죠.
'위에서 대주지도' 않았는데 자체의 힘으로 기적을 이룬 사람은 바로 김기덕 영화감독입니다. 그는 영화 '피에타'로 세계 3대 영화제인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에서 한국사상 처음으로 최고상인 대상, 황금자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학업, 커리어는 모두 험난한 고난투성이었습니다. 영화공부는커녕 학력은 겨우 중졸, 15살부터는 서울 청계천과 구로공단을 전전하며 일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밥벌이로 떠돌던 그는 서른둘에 영화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에 반하게 되죠. 곧 남한에 돌아와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계 문턱을 넘은 그는 1996년에 '악어'라는 작품으로 감독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한영화계에선 그는 항상 비주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초기 작품에 대해 '아마추어 영화다,' '작품이 투박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관객 70만을 동원해 흥행에 좀 성공한 '나쁜 남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내 관객의 외면을 받았죠.
그래서 투자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제작한 모든 작품들은 평균 영화제작비 40억 원(400만 달러 정도)의 10분의 1수준이었죠. 이번에 대상을 받은 영화도 1억 원의 제작비에, 12회 촬영으로 한 달 만에 완성한 것입니다.
돈이 없어 현재 산속에서 화장실도, 변변한 부엌도 없이 오두막에서 한 겨울에는 방안에 텐트를 치고 산다고 합니다. 때론 노숙자로 몰려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구요.
그는 스스로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이단아가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누가 뭐라고 해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일 겁니다. 즉, 시류를 먹고 살다 시류에 파묻히는 대다수의 영화와 차별화했다고 할까요.
그의 영화는 대부분 어둡고 잔혹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더 갈 데가 없는 밑바닥 인생의 심리를 거칠고 변태적으로 그렸죠.
그러기에 남한영화계에 끊임없는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평론가는 "한국 영화는 대부분 특수한 소재나 극단적인 캐릭터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보편적인 방향으로 수렴하는 반면에, 김 감독 영화에서 이것들이 끝까지 극한으로 치닫는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대주면 좋고 안대주면 더 좋다"의 원조인 북한에서 이보다 더 위대한 기적들, 결과들이 조만간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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