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도시 미화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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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여기 서울에서는 2005년 광주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교직원들의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발단은 그때의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영화는 교장을 비롯해 학교의 교직원들이 청각장애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 그리고 한 신임교사가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교육당국과 경찰도 나서지 않는 현실, 가까스로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웠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나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교직원 6명 가운데 2명만 징역형을 받았고, 나머지 4명은 집행 유예로 풀려나거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기득권 계층에 의해 힘없는 소외계층의 인권이 어떻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각성시키고 있습니다.

영화 개봉 후 분노는 온 사회로 확산되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랴부랴 대책을 내 놓았고, 무관심했던 언론도 들끓었습니다. 영화 한편이 '도가니 효과'를 내면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셈이죠.

경찰은 재조사에 착수했고, 광주시 교육청은 학교를 폐쇄하는 동시에 법인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대법원도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정치권은 여야 국회의원 80명이 서명한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이후 관련기관의 관리감독 소홀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언론은 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하는 기사들을 잇달아 쏟아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약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북한식 장애인 정책 중에는 1980년대 초 실시한 평양 시에서의 대대적인 장애인 소개사업도 있었습니다. 혁명의 수도인 평양의 미관에 장애인들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진행되었죠. 북한에서 자주 있는 북한식 '도시 미화 사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조직별, 인민반별로 장애인들이 빠짐없이 조사되었으며, 특히 선천적으로 키 작은 사람들을 위주로 도시미관에 해를 준다고 판단되는 장애인들을 모두 지방으로 소개시켰습니다. 제 주변에도 여러 명 있었는데 일부는 호위총국 장성들의 자손이라 면제되었습니다.

아마도 서울에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장관들은 물론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들 전원이 사표를 써야 할 겁니다.

이외에 수십 명에게 가짜 졸업장을 만들어준 사건, 학생들이 3년 동안 책 대신 삽을 들고 간식으로 빵조각을 먹으며 건물확장과 운동장 조성과 같은 강제노역에 내몰린 사실 등이 보도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자기 학교를 꾸리는 일, 그것도 간식으로 빵까지 먹어가면서 하는 일을 강제노역이라고 표현하는데, 북한에서 학생들이 1년 내내 아리랑집단체조, 모내기, 추수, 영생탑건설, 김일성, 김정일화 온실건설, 중소형발전소, 만수대지구 살림집건설에 배를 곯으면서 동원되는 것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북한에서는 장애인을 포함해 전체국민을 수령에 대한 충성을 이유로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됩니다.

그러나 자유세계에서는 수천, 수만의 기자들, 작가들, 비정부기구들, 인권활동가들, 종교인들, 정치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사회를 감시하고 지켜보고 있으며, 이번 영화 도가니사태에서도 증명되었듯이 사건이 터지면 대중의 분노와 힘은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세상을 통째로 바꾸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