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가디피도 가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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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미스라타의 한 쇼핑센터 냉동창고에 놓인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시신.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애급의 무바라크에 이어 리비아 독재자 가다피(카다피)시대도 갔습니다. 왕 중의 왕을 자처하던 카다피는 내전으로 자기 고향으로 쫓겨 간지 얼마 안 되어 시민군과 교전하던 중 하수도구멍에 숨었다 발견되어 머리에 총상을 맞고 사살되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은 ‘쏘지 마, 쏘지 마’였다고 합니다. 손에는 황금권총을 쥐고 있었지만 그의 목숨을 건져주지 않았습니다. 42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재자의 처참한 말로였습니다.

그의 가족들도 그야말로 풍지 박산이 됐습니다. 7남 1녀의 자식들 중 후계자로 거론되던 넷째 아들 무타심은 카다피와 함께 사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6남, 7남도 사망했고 나머지 자식들은 알제리 등 사방으로 도피했고요.

리비아는 물론이고 지금 전 세계가 이를 환호하고 있습니다. 2003년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이 목에 밧줄이 걸려 무너지고 시민들이 이를 짓밟던 환의를 연상시키고 있습니다. 당시 떨어진 동상의 목을 시민들은 길거리로 끌고 다녔고, 체포된 후세인은 집권기간 많은 사람들을 처형한 죄로 사형되었습니다.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으로 폭발된 중동혁명은 애급에 이어 리비아에서도 독재자를 청산했습니다. 마치 북한에서 젊은이들이 전쟁물 영화를 보면서 하던 농담을 연상시킵니다. ‘적은 치면 넘어지고, 쏘면 거꾸러진다.’ 북한이 만든 영화들에선 공산군은 절대 패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는 독재가 치면 넘어지고 쏘면 거꾸러지고 있습니다. 인제 남은 위험한 독재국가는 수리아와 예멘, 그리고 우리의 고향, 북한이라고 합니다.

카다피는 그동안 많은 엽기적인 일화도 남겼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8시간이상 못 탔고 계단은 35개위는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 방문시마다 호텔에 묵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대형 텐트를 여기 저기 치고 자곤 했습니다. 때론 말과 낙타도 그 앞에 풀어놓고요.

호위병들은 40여명의 미녀들로 꾸렸으며 그의 말로는 모두 ‘숫처녀’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카다피는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자신의 의지’라고 하면서 ‘여성들도 전투 시 적들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해외순방 때마다 수십 명씩 데리고 다니며 뽐냈는데 정작 카다피가 숨질 당시 그녀들은 한 명도 그의 곁에 없었습니다.

간호사는 전부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들을 썼는데 리비아여성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늘 극적인 말과 행동을 좋아한 그의 괴벽한 성격은 다른 데서도 많이 연출되었는데요, 1988년 트리폴리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400명의 수감자들을 석방시키면서 불도저로 교도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쇼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아랍정상회의 때는 회의 내내 시가를 입에 문 채 않아있는가 하면 마이크를 움켜쥐고 사우디 국왕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카다피는 각종 테러와 반미무장단체에도 개입해 서방의 ‘공공의 적’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86년 서베를린 미군 나이트클럽 폭탄테러, 88년 270명을 숨지게 한 팬암 항공기 폭파사건을 잇따라 일으켰죠. 미군의 트리폴리 폭격을 간신히 넘겨 목숨을 겨우 건지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하는 등 서방세계에 본격적인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지만 결국 그는 자기 국민들에 의해, 시민혁명에 의해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것이 ‘중동의 미친개’별명을 가진 독재가 카다피의 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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