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금강산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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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시간입니다. 미국북한인권위원회 김광진 객원연구원이 전해드립니다.

며칠 전 개성시 자남산 여관에서는 이산가족상봉과 인도주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남과 북사이의 적십자 회담이 있었습니다.

남측은 매월 남북 각 100가족씩 상봉 정례화, 이미 상봉 경험이 있는 이산가족의 재상봉, 매월 5천 명씩의 생사∙주소 확인, 80세 이상 고령자의 고향방문,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사확인 등을 제의했습니다.

북측은 상봉은 설과 추석 등 명절을 기본으로 1년에 3-4차례 각각 100명 규모로 하고 화상상봉과 영상편지 교환사업을 병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또한 상봉 정례화를 위해서는 장소문제가 해결돼야 하며 이와 관련된 실무회담의 빠른 개최를 촉구했습니다. 이는 상봉장소인 이산가족면회소를 매개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노린 북한의 전술로 보입니다.

이외에 북측은 상봉 정례화를 비롯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쌀과 비료를 제공하면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산가족 문제와 지원을 연계했습니다.

결국 북한식으로 해석하면 남한이 이산가족상봉을 북한이 원하는 정도로 라도 정례화 하려면 금강산관광도 빨리 재개하고 해마다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을 '갖다 바치라'는 뜻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북한당국은 자기 인민들에게도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은 금강산관광을 남한에 제한적으로 개방하여 해마다 막대한 외화현금을 거두어 들였습니다. 지금까지 금강산을 통해 남쪽에서 흘러들어간 현금은 계약대로 모두 지급되었다면 10억 달러를 상회합니다. 이 돈을 1년에 1억 달러씩 쌀을 사오는데 썼다면 북한 전체의 한 달 식량 분은 해결되었을 겁니다.

또한 남한은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수십만 톤씩 햇볕정책의 명목으로 쌀과 비료를 지원했으며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41억 달러나 된다고 합니다. 1년에 4억 달러면 추가로 넉 달 분의 식량을 해결한 셈이죠. 결국 남한으로부터 거의 반년분의 식량을 해마다 들여온 셈입니다.

그런데 이 많은 돈과 자원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남한과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퍼주고 갖다 줘도 지원이 끊기기 바쁘게 북한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기아와 굶주림소식 뿐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만 봐도 그렇습니다. 김일성의 무모함으로 일어난 동족상쟁과 파괴의 전쟁 3년으로 천만 이산가족이 발생했으며 그들 대부분은 지금 반세기가 넘도록 부모, 형제가 살아 있는지 알지도, 만나지도 못한 채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한에는 현재 이산상봉을 신청한 사람이 13만 명에 달하며 그중 이미 4만여 명은 숨졌고 생존자의 30%가 훌쩍 넘는 80대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한을 풀지도 못한 채 해마다 수천 명씩 세상을 뜨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어떻습니까. 온갖 박해와 차별, 성분 때문에 남한에 가족이 차라리 없는 것이 더 편했죠. 아마도 할 수 있었으면 이산가족 대부분이 남한과의 연계를 부정하거나 이력서 가족 란에서 헤어진 형제들을 지웠을 겁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고 인간애는 폭정보다 훨씬 강합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인민들이 수백만 명 굶어죽으면서 한때 유행했던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 캐나다에 있는 친척, 해외에 있는 인척을 찾으려는 붐이었죠. '천덕꾸러기,' '원한'의 남한 가족은 갑자기 김일성의 '백두산 줄기,' 김정일의 '룡남산 줄기'에 버금가는 '금강산줄기'로 바뀌었습니다. '금강산 줄기'에 닿으면 뭐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갑자기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죠.

사랑하는 북한형제 여러분. 북한을 떠나 지금까지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2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현대판 이산가족이 그만큼 늘었고 우리식대로 표현하면 '금강산 줄기'가 더 길게 뻗어나간 셈입니다.

한 혈육, 한 형제, 한 강토를 잇는 희망인 '금강산 줄기'가 더 힘차게 뻗어나가 마침내 남북을 완전한 하나로 만드는 통일의 다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한 줌도 안 되는 통치자들의 이기와 결정, 그들이 원하는 대가의 희생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족으로서 모든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