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인간은 다’

0:00 / 0:00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때 아닌 불볕더위로 그렇지 않아도 모내기동원에 힘들고 바쁘실 텐데 날씨까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때도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당의 구호를 높이 들고 해마다 두 번씩 그리고 농사철이면 오는 금요일마다 농장에 나가 일손을 돕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그 때는 학생들을 고등중학교 3학년부터 동원시켰었는데 요즘은 '밥 먹는 인간은 다 나오라'면서 초급중학교, 일부지역에서는 소학교학생들까지 동원시킨다면서요. 강냉이 영양단지는 '학생단지'라고 한 말이 우연치 않습니다.

저는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3대혁명소조를 강원도 문천시 농장에서 했는데요, 술을 좋아하는 함흥공산대학 졸업생이 소조책임자를 해 매일 조ㆍ중ㆍ석으로 마셨습니다. 가을이 되면 매일과 같이 농장원들의 돌 생일, 결혼식 등 관혼상제에 초청받아 가곤 했고요.

따로 운영했던 소조식당에서는 매끼 청어 회, 청어조림 등 특식을 해주었습니다. 집으로 휴가 올 때면 담당 작업반에서 술 빵깡(통)에 쌀 한 배낭, 콩 한 배낭 등 그야말로 이고 지고 안고 가도 다 가져갈 수 없을 정도로 낟알을 챙겨주었죠.

특권을 누리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소조생활을 하면서 느꼈을 겁니다. 대접받고 거들먹거리기는 좋았지만 자기 본연의 일은 따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당의 방침으로 해마다 새로운 '주체농법' 지시가 내려오는데 정말 현실과 동떨어진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 많았죠. 돼지 먹이로 이 풀이 좋다 하면 심어라, 저 풀이 좋다 하면 심어라, 우리는 분조마다 다니면서 이 풀을 도대체 몇 개나 심었는지 세고 조사하면서 다녔죠.

또 한 번은 클로렐라인지 뭔지 배양해 끓여주면 돼지가 잘 큰다고 당에서 하라고 해 오고가고 하는 사람들이 참았다 작업반 실 옆에 만들어놓은 웅덩이에 오줌을 싸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뭐든지 진지하게 하면 좋겠는데 매번 수박겉핥기 식으로 하군 했죠.

가장 쇼킹했던 것은 인분으로 대용비료를 만들어 뿌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일단 겨울 내내 인분을 일인당 할당해 확보해 놓고 이것을 물에 타 끓입니다. 온갖 균을 죽이기 위해서죠. 이때 나는 냄새, 정말 죽입니다. 다음은 이것을 질이 좋은 진흙에 섞습니다. 몰타 만드는 방법과 같죠. 그리고 햇볕에 잘게 널어 말립니다. 마지막 공정은 가루로 내는 것이죠.

이것을 대용비료라고 하는데 이렇게 정성스럽게 생산된 비료는 농장원들이 논에 나가 손으로 직접뿌립니다. 북한농촌에 변변한 마스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리저리 뿌리면서 입과 코로 그 가루를 먹으면서 작업하는 거죠.

이것도 귀해 서로 훔치느라 난리였습니다. '큰 집에 가는 것(큰 변)'도 남의 집에 가면 큰일 나는 것처럼 떠들었죠. 때론 장마당에까지 상품으로 나왔습니다. 농촌에서나 이럴 줄 알았는데 도시로 귀가해보니 온 나라가 난리법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그것을 비닐을 대고 받아 싸서 인민반에 바치곤 했죠.

아직도 이런 '주체농법'이 계속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농법의 창시자인 최고 존엄이 앞장서서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