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북한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한다죠. '김정은이 당 간부는 당당하게 죽이고, 사법기관 간부들은 사정없이 죽이며, 보위부는 보이지 않게, 군 간부는 군말 없이 죽인다'고요.
사람 잡이, 숙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정없이 진행되면 백성들이 이런 말을 다 지어내겠습니까.
오래전부터 간부들의 부정축재, 뇌물행위에 대해서 비꼬던 유머에서 아마 따온 모양입니다. '당일꾼들은 당당하게 해먹고, 보위원들은 보이지 않게 해먹고, 안전원들은 안전하게 해먹는다'고 했죠.
또 군에서는 보급물자가 부족해 '군단에서는 군데군데, 사단에서는 사정없이, 연대에서는 연달아, 대대에서는 대대적으로 떼먹는다'고도 했습니다.
이러던 북한 간부들이 인제는 김정은 치하에서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신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북한에서는 청년들의 직업선호도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간부는 지옥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간부보다는 의사나 컴퓨터 전문가, 교원직을 더 선호한다죠.
북한에서의 직업선호도는 시대를 거쳐 변화를 겪어왔죠. 사회주의가 번성기일 때는 당 일꾼, 보위일꾼, 보안원 등 권력기관들과 외교관, 무역일꾼들 인기가 가장 좋았습니다.
핵심계층, 기본군중,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눈 성분제도가 공공연히 운영되기 때문에 당이나 보위기관 가족출신과 결혼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회에서 인정이 되군 했죠.
그러다 '고난의 행군' 시대 들어서면서 당, 보위부 등 권력기관보다는 돈을 잘 버는 외화벌이 일꾼, 무역일꾼들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해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로 군인들도 인기가 좋았죠. 군인들에 대한 대우가 좋아져 호강하지는 못해도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 거죠.
사실 교원이나 연구사들은 최악의 직업이었습니다. 의사도 별루 선호직업이 아니었죠. 국가에서 배급을 못주니 의사들은 환자들이 가져다주는 술, 담배, 뇌물로 연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쩍하면 약초 캐기 동원을 다녀야 했죠.
이들보다는 오히려 옥류관 접대원, 외화상점 판매원이 훨씬 더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더 좋은 음식, 달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까요. 운전기사도 최고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의사, 컴퓨터 전문가, 교원들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니 아마도 북한체제, 사회가 변했을 때 시장경제, 새로운 경쟁사회에서 경쟁력이 가장 높은 직업군이 뭔지 인민들이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사'자 달린 직업이 최고라고 하죠. 의사, 변호사, 검사, 변리사 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학생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맞은 학생들이 전국에 있는 의과대학에 먼저 진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사범대학, 교원대학은 별로 인기가 없었지만 서울에서는 여기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아직까지도 여자직업 중 최고의 신부 감은 교사입니다.
한때 북한 항간에서는 또 '부'자를 선호하기도 했죠. '간부, 어부, 과부.' 그런데 여기서 간부가 빠졌으니 또 어떤 '부'자가 대신할지 궁금합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