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비참한 독재자들을 떠올리며 바라는 새해 소원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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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부군에 총을 겨누고 있는 저항세력.
AFP PHOTO/JOHN CANTLIE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새해 2013년. 올해는 또 어떤 운명들이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모든 분들이 내년 설날에 2013년을 행복한 한 해로 추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 건강하고 처벌받지 않고, 가난한 살림에도 가족 간 우애가 돈독해지고 돈 많이 벌어 살림살이가 펴지면 하는 소망은 지구 어느 나라나 다 똑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은 보위부, 안전부, 당 이런 권력기관 간부들이 인민들 뜯어내지 않고 말 잘못했다고 잡아다 반동으로 처벌하는 그런 일만 줄어도 전체 인민이 행복해 질 겁니다.

저도 올해로 기자 생활 시작한 지 12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대체로 국제부에 있었는데, 제가 10년간 본 세계의 흐름은 역시 영원한 독재국가는 없고, 결국엔 무너지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으니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기자로 있는 동안 참 많은 독재국가가 무너졌습니다. 군사독재정부가 알아서 체제를 민주주의적으로 전환해 세계의 박수를 받고 있는 미얀마와 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 독재국가들은 혁명으로 결국 체제가 망했습니다.

특히 독재국가들이 가장 많았던 중동 국가들엔 최근 연간 급격한 변혁이 일어났습니다. 재작년에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 발생해서 23년간 독재로 집권했던 벤 알리가 쫓겨났고, 이집트에선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던 무바라크가 축출돼 지금 감옥에 잡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독재국가들이 그냥 순순히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튀니지나 이집트의 독재자들은 그래도 순순히 무너진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결국 전쟁으로 망해 교수형에 처했습니다. 리비아도 치열한 내전을 1년 가까이 지속했습니다. 수만 명이 숨진 끝에야 카다피가 시민군들 손에 잡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해 33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예멘의 살레 정권도 국민 봉기가 일어나 끝내는 정권을 유지 못 하고 외국에 도망을 쳤습니다.

독재의 강도가 셀수록 독재국가를 몰아내기 정말 힘이 듭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를 들 수 있습니다. 시리아는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물려가면서 42년째 세습 독재를 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어느 나라보다 시리아의 독재는 워낙 강해서 전문가들도 시리아에선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시리아 역시 보위부처럼 그런 비밀정보기관의 감시가 두려워 사람들이 할 말도 못하는 그런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쟈스민 혁명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리아에도 폭동이 일어났고, 지금 20개월째 내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개월 동안 4만 5,000여 명의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물론 그 중엔 독재정권을 지키다 죽은 정부군 숫자도 다 포함돼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쨌든 최소한 수 만 명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대가는 헛되지 않아서 올해는 시리아 독재정권이 붕괴될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합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자유는 역시 피를 먹고 자란다는 교훈을 누구보다 새삼 느낍니다.

독재국가들에서 봉기는 한 점의 불씨로부터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쟈스민 혁명의 시초도 한 청년이 독재 체제하의 궁핍한 생활에 못 견뎌 분신자살을 한 것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한국에서 청년 김주열의 죽음이 4•19혁명을 불렀고,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이 88년 민주항쟁을 불러온 것과 매우 유사하죠.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너무나 통제와 감시가 심해서 철옹성 같을 줄 알았던 독재국가들에서도 어느 날 어느 도시에서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에 분노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했다는 짤막한 보도가 나오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이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내전으로 번지는 것을 저는 국제부 기자로 목격했습니다. 마치 오랜 가뭄으로 바싹 마른 덤불에 불꽃이 던져지듯 그렇게 활활 타오르고 끌 수 없이 변했습니다.

리비아, 시리아 이런 나라들은 같은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다 과거에 북한과 매우 친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끝났습니다. 물론 저 두 나라의 독재 강도는 북한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수만 명의 희생이 있어서야 끝내 독재를 몰아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마 북한에서 저들 나라처럼 봉기가 일어난다면 최소한 수십만 명은 희생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직은 북한 사람들에게 목숨 바칠 용기, 총살과 관리소의 공포를 떨쳐낼 용기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 체제에 반항한다는 것은 이름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저부터도 맞서 싸우지 못하고 남쪽에 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목숨 바쳐 싸우라 이런 말은 못하겠습니다. 제 목숨도 못 내놓았는데 누구한테 일떠서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메마른 북한에도 언젠가 불씨는 던져질 것이고, 확 타오를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독재국가들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직 북한만이 유일하게 살아 버팁니다. 한 개인의 장기독재도 아니고 무려 3대 세습 독재입니다. 독재를 숨기려고 아버지니 어버이니 하는 말 가져다 쓰지만, 총에 맞아 죽은 카다피도 자기가 인민의 아버지라고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세뇌시켰고, 시리아의 아사드도 자기가 자애로운 어버이라 선전했습니다. 독재자들은 다 똑같습니다. 자신과 인민은 존중과 신뢰의 관계로 맺어진 혈연관계라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진짜 아버지는 불만을 이야기하는 자식을 온 가족과 함께 끌고 가 고문해 죽이진 않습니다.

저의 평생의 소망은 북한이 할 말 마음대로 하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새해 다시 한 번 그 소망을 기원해 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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