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청문회 기준 북한에 들이댄다면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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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마지막날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엊그제 볼 일이 있어 국회에 들어가니 사방에 온통 기중기니 작업트럭이니 어수선해서 잠깐 동안 무슨 일이지 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 25일이 대통령 취임식이지”하고 떠올랐습니다. 25일, 그러니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정식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5년 동안 한국에서 지속되는 겁니다.

국회 앞 광장이 넓어 매번 대통령 취임식을 거기서 열어왔고 25일에도 6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립니다. 북한은 말은 사회주의니 뭐니 온갖 좋은 말 다 붙이지만 사실 아버지 죽으면 아들이 또 넘겨받아 하는 세습 왕조 정권이니 이런 취임식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정부도 새롭게 구성됩니다. 북한으로 말하면 내각의 부서를 새로 짭니다.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에선 해양수산부가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선 없앴다 박근혜 정부에선 다시 만드는 식입니다. 부서 이름도 바뀝니다. 전 정권에서 행정안전부로 불렸는데 지금 정부에선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는 식입니다. 이렇게 5년에 한 번씩 정부기관 부서들이 없어졌다 생겨났다 작아졌다 커졌다, 이름이 바뀌었다 다시 돌아갔다 이럽니다.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당신이 권력을 갖고 나라 잘 좀 이끌어주시오 하고 국민들이 위임해 준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일하기 좋게 부서들을 조정하는 것인데, 이미 대통령 선거하기 전부터 이런 것은 공약으로 내놓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습니다.

새 정권이 시작되면 또 장관, 대법원장, 청와대 수석들도 다 바뀝니다. 대통령은 자기와 일할 고위급 참모들을 뽑아놓고 국회에 통보합니다. 그러면 국회가 장관들을 검증해서 과연 제대로 일할 사람들인지 가려내고, 부적격자라고 생각하면 자격이 안 되니 이 사람은 장관이 될 수 없다고 퇴짜 놓습니다.

요새 한국 언론은 부서가 바뀐다는 것이나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 이런 것보다는 장관급 고위 인사들에 대한 검증 문제로 시끌벅적합니다. 이 사람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걸 검증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탈탈 털어내니 온갖 먼지가 다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한 10년 쭉 살아보니까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이 재산 문제와 군대 문제입니다. 이 사람의 재산이 정당하게 벌어들인 것인가, 부정하게 벌었나 이런 것을 따지는데 뇌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안 됩니다. 주로 법을 어기고 땅이나 집을 샀던 것이 많이 걸립니다.

여기는 또 자식에게 돈을 함부로 물려주지 못합니다. 북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는 돈을 물려주려면 3만 달러 이상부터는 세금을 물어야 합니다. 많이 물려줄 경우 심지어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1,000만 달러 물려주겠다 이러면 500만 달러가 세금으로 국가에 가고 500만 달러만 자식에게 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을 수도 없고, 물려주자니 평생 모아 온 피 같은 재산 절반이나 국가에 내야하고, 이러니 온갖 편법 다 동원해 세금 줄여서 물려주려다 걸리는 겁니다.

저 같은 백성들이야 상속세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 쓸 돈도 모자라겠지만 장관 될 정도의 사람들은 대체로 돈이 많습니다. 부모 때부터 잘 살아서 공부 잘 시켜줬으니 잘 나가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장관이 안 되면 들키지 않을 일도 장관이 되겠다고 욕심을 부리다가 들켜서 망신만 당하고 장관도 못 되는 일도 많습니다.

군대 문제도 많이 걸리는데, 아버지가 힘이 있으니까 아들을 빼돌려서 군대에 안 보내는 겁니다. 제일 많은 형태가 병에 걸려서 군대에 못 간다는 것인데, 물론 고위급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보면 일반 백성보다는 자식이 군대에 안가는 비율이 월등히 높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북한이 훨씬 더 심각하죠. 심지어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이런 사람들의 자식들 군대에 가는 줄 압니까. 1990년대인가 당시 총참모장이었던 김영춘이네 집안 털어보니 일가친척 20여 명 중에 군대에 간 놈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그러니까 남이나 북이나 나라는 가난한 백성들이 지킨다는 말이 나온 것인데, 북한이 100배는 더 심각합니다.

요즘엔 박사 논문 베꼈다가 들통 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기는 박사 자격을 대학에서 주기 때문에 국가에서 주는 북한보다 박사 되기가 한 열배는 쉽습니다. 북에서 농사짓다 와도 여기서 돈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박사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저는 문제라고 보는데, 문제는 박사 자격이 없으면 또 승진이 잘 안 되니 할 수 없이 대충 박사자격 따면 좋습니다. 그러니 그 자격 받겠다고 베끼다 걸리는 겁니다.

사실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먼 미래에 장관 될 줄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 당장은 승진하고, 재산도 적당히 물려주고, 자식도 군대에서 빼돌리고 이렇게 눈앞의 이익이 더 중요하죠. 이렇게 살면 차관 정도까지는 괜찮은데, 청문회를 받아야 하는 장관급이 될 때는 인생을 더럽게 살아온 사람들은 걸리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문회를 보면서 “야, 그래도 크게 되려면 평생을 깨끗하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 조금씩 갖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가 깨끗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당장 원칙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북한은 눈치 볼 것도 없으니 정말 막장 국가입니다. 아마 청문회를 한해서 여기 기준을 들이대면 사형이나 종신형을 먹어야 할 인간들이 윗대가리에 순서대로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 더 길겐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한국에서 뭔 일이 있다면 창피함도 모르고 남한 욕하기 바쁩니다. 북한은 욕을 하기 전에 한국을 보면서 백번은 배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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