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판이한 남과 북의 여성인권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3.07
womenday_power_play-305.jpg 3.8 세계여성의날을 하루 앞둔 7일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3.8국제부녀절입니다. 3.8절은 1908년 3월 8일 미국 시카고 섬유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데에서 유래됩니다. 북에서는 오늘을 국제부녀절이라고 하며, 중국에선 그냥 부녀절, 한국을 포함한 기타 나라들은 세계 여성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름이야 어찌됐던 기념행사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세계적으로 가장 요란한 행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중앙기념보고대회까지 여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백두혈통밖에 모르는 북한이 미국에서 기원된 명절을 이렇게 열심히 쇠는 것을 보면 어떤 때는 신기합니다.

여기 한국은 공휴일은 고사하고 달력에 세계 여성의 날이 표기조차 돼 있지 않습니다. 탁상달력을 보니까 3월에 날짜에 설명이 붙어있는 날이 6개입니다. 3.1절, 3일 납세자의 날, 6일 경칩, 3.15일 의거기념일, 19일 상공의 날, 21일 춘분 이렇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 와서 10년 넘어도 이날을 기념한 적은 없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은 오히려 발렌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씁니다. 2월 14일을 발렌타인데이라 하는데 주로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사탕이나 초콜렛을 주는 날이고, 3월 14일인 화이트데이는 남성이 답례 선물 주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몇 달러 정도의 사탕을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자들은 그래도 보통 여자보단 열 배 정도 더 비싼 선물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자가 선물에 약해서 그럴까요.

여기 남자들은 “여자들은 사탕 몇 알 주고는 화이트 데이까지 한 달 내내 뭘 받을까 기대하는데 어떻게 만족시키지” 이렇게 툴툴대면서도 어떻게 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고 맘에도 드는 선물을 할까 고민합니다. 요즘은 4월 14일을 애인이 없는 사람이 만나는 ‘블랙데이’라고 정했나 봅니다. 참 기념일 잘만 만들어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100년도 넘은 세계 여성의 날은 잊혀만 가는 분위기입니다. 하긴 여성의 날만 있는 것이 불공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몇십 년 뒤엔 여성 인권이 너무 높아져서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받는다고 남성의 날을 제정하자고 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진짜로 웃긴 것은 세계적으로 여성의 날을 가장 성대하게 쇠는 북한이 정작 여성의 인권에 있어 세계 최하위라는 것입니다. 북에서 3.8절이면 남자가 여성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해주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남자들이 평소 얼마나 집안일에 무심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남쪽은 남자들이 보통 집안일을 분담합니다.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죠. 애를 낳으면 함께 돌봅니다.

남녀평등이 기념일에 주장하는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지켜지는 것입니다. 저도 여기서 10년 넘게 살면서 남쪽 남성들에게 배운 게 좀 많아서 이제 제가 북한에 가면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듭니다. 물론 북한에도 아내 일을 도와주는 남편들도 있지만, 많은 남편들은 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아내들은 장사해 집안 먹여 살릴래, 저녁에 들어와 밥하고 청소할래 얼마나 힘듭니까. 북한 여성들이 한국에 오면 이런 천국도 있구나 하고 놀랄 겁니다.

그래서 좀 젊어서 탈북해 온 가정들 보면 이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북한 여성들이 한국에 와보니 여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너무 잘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남편에게 여기 남자들 좀 따라 배우라 이러면 일부 남편들은 “목숨 걸고 한국까지 데려왔더니 배부른 소리 한다”면서 화를 내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합니다. 제가 보면 남쪽에 와서 남쪽 기준으로 빨리 사고방식을 바꾼 남편들은 가정을 유지하고, 북한 사고를 버리지 못한 남편들은 이혼당하기 쉽습니다. 특히 여기는 남자가 여자에게 손찌검한다는 것은 정말 미개인으로 취급되는데, 북쪽에선 이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북한 여성들은 가정을 먹여 살리겠다고 20㎏짜리 쌀 배낭 메고 몇 십리씩 걸어갑니다. 여기 여성들에게 몇 십㎏짜리 배낭을 메라면 대개 남편이 있는데 미쳤냐고 할 겁니다. 남쪽에서는 무거운 것은 당연히 남자 몫이고, 심지어 가벼운 손가방도 남자가 들고 걸어가는 연인들도 거리에 참 많습니다. 제 기준으론 그런 것까진 좀 지나친 것 같지만, 아무튼 남과 북이 여성 인권은 너무 판이합니다.

예전에 제가 북에서 대학생 시절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나네요. 해방 후에 평양에 부임돼 오던 소련대사가 기차가 신의주에 들어서자마자 무겁게 메고 지고 있던 짐을 몽땅 아내보고 지라고 하더랍니다. 아내가 “당신 왜 그러세요”하고 놀라니 대사가 “여기는 조선이라고”하고 대답하더랍니다. 지금 그 대사 부부가 평양에서 서울로 온다면 이번엔 아내가 짐은 물론 옷까지 벗어서 남편에게 들게 하며 “여보, 여긴 한국이야”라고 해 통쾌한 복수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처럼 남과 북은 여성에 대한 존중 정도가 정말 판이합니다.

제가 남쪽에서 많이 놀랐음에도 아직 한국 남자들은 서방 남자들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미국이나 유럽 남자들이 여성을 대하는 것을 보고 정말 부러워합니다. 그러니 여성을 잘 대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문화적으로, 가정에서부터 보고 배워 체질화돼 있어야 하지 억지로 잘해주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북한의 실상은 김정은이 임신한 아내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 하나만 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남쪽에서 그러면 당연히 욕을 먹고 심하면 귀싸대기 얻어맞습니다. 지도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이 중앙기념보고대회 열 번 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3.8국제부녀절에 봉건 남존여비의 굴레에 여전히 묶여 있는 북녘의 어머니, 누이들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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