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푸르허 머슴살이의 진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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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주석이 항일빨치산 시절 부인 김정숙과 찍은 사진.
김일성 주석이 항일빨치산 시절 부인 김정숙과 찍은 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일성회고록이 밝히지 않는 김일성 혁명역사의 진실, 오늘은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김일성 회고록에서 ‘푸르허 마을 혁명화’라는 한 개 절로 소개되는 푸르허의 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직에선 유능한 공작원들을 여러 명 파견하였으나 가는 족족 다 실패하였다. 거기에 조직을 당장 박아 넣어야 하겠는데 누구든지 들어가기만 하면 다 잡혀서 목숨을 잃으니 묘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누구든지 목숨을 내대고 들어가서 잡아낼 것은 잡아내고 조직할 것은 조직하여 이 마을을 반동 동네로부터 혁명 동네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되였다. 이렇게 되어 내가 푸르허에 가겠다고 자원해 나섰다.”

이것을 보면 마치 목숨을 내대고 혁명을 위해 머슴으로 가장해 잠입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북에서 1980년대에 만든 영화 ‘조선의 별’도 푸르허에서 김일성이 머슴살이 했다는 내용을 한 개 부를 할당해 보여줍니다. 김일성이 겨울 우물가에서 아낙네들에게 얼음도 까주면서 친해지는 장면이 유명하죠.

하지만 알고 보면 실상은 그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김성주는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군의 고동뢰 소대장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쫓기게 되자 푸르허에 들어가 숨은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국민부는 말썽만 일으키는 김성주에 대해 벼르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부가 개척한 오가자 농민운동을 김성주를 비롯한 공산주의 추종 청년들이 망친 것이죠.

북한에선 ‘오가자 반제청년동맹’을 김성주가 만들었다고 선전하지만, 사실 이 조직을 만든 사람은 국민부 거두였던 고이허란 사람입니다. 그는 당시 오가자 삼성학교에서 교원으로 있으면서 이 지역 농민운동을 지도했습니다. 이외 고이허는 오가자에서 농우회를 만들었고 또 농민 계몽 잡지 ‘농우’도 직접 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이 오가자에 차광수가 자기의 친구 김혁, 본명 김근혁을 데리고 와서 농우 잡지를 편집하고 있었던 최일천을 구워삶았습니다. 가방 끈이 짧은 최일천은 일본 도쿄대학 유학생들인 차광수와 김혁의 앞에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죠. 차광수 네는 잡지뿐만 아니라 농우회까지도 모조리 자기들 마음대로 ‘농민동맹’이라고 이름을 고쳐버렸습니다.

고이허와 친했던 오가자의 순박한 농민들은 차광수가 데리고 다니는 패거리들 앞에서 기를 못 폈습니다. 이 차광수 패거리는 현지에서 반석에서 온 ‘몽치단’이라 불렸습니다. 차광수는 고이허가 임명한 오가자 반제청년동맹 위원장을 제명하고 그 자리에다가 최일천을 올려놓는가 하면 소년학우회를 소년탐험대로 이름을 고치고 김성주를 대장에 임명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곳을 개척했던 고이허는 이 사실을 국민부에 다 이야기했고 국민부 간부들은 분노했습니다.

이 와중에 이후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장춘으로 총을 사러 갔던 이종락, 김광렬 등 김성주의 스승들이 모두 일제에게 체포됐습니다. 김성주는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종락 부대가 조선혁명군 특무대에서 빌려왔던 총 20여 자루를 모두 가지고 잽싸게 도망쳤습니다.

그러자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겸 조선혁명군 총사령이던 현익철이란 사람이 고동뢰란 소대장에게 한 개 소대를 주어 당장 김성주를 잡아 총을 찾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익철은 여러분이 잘 아는 양세봉의 상관 격이라고 할 수 있었던 민족주의 지도자였죠. 고동뢰는 김성주가 무송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현지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송에는 김일성의 친구인 장울화의 아버지 장아청이 대부호로 있는 곳입니다.

김성주는 장울화를 꼬득여 고동뢰가 거느리고 온 소대가 공산당이라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사실 고동뢰의 부대는 조선혁명당 소속의 민족주의 계열 부대로 당시 중국 정부와 합작하는 사이었고, 김성주야 말로 공산당이었는데, 거꾸로 공산당 감투를 고동뢰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죠. 당시 중국 정부는 공산당이라면 치를 떨고 다 잡아들일 때였는데, 김성주의 고발에 속은 중국 경찰은 한 조선인 객주집에서 점심밥을 먹던 고동뢰 소대를 체포합니다.

이렇게 되니 현지 조선인 유지들이 나서서 이 사람들은 공산당이 아니라 진짜 조선혁명군이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탄원하게 되죠. 지역에서 제일 큰 부자 장아청의 아들은 공산당이라고 하지, 현지 주민들은 공산당이 아니라고 하지, 하니 중국 경찰이 난처해졌습니다. 결국 경찰은 이들이 가져온 총에서 총알을 빼고 빈 총만 주고 어느 여관에 머무르게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고동뢰가 화가 나 맨손으로라도 김성주를 잡아오겠다고 여관을 나서는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고동뢰의 배를 관통했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누가 총을 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구나 봐도 이건 정황상 김성주가 쏜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조선혁명군 총사령 현익철은 무려 100명의 무장부대를 풀어 당장 김성주를 잡아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당시 조선혁명군 사령부에서 호위병을 지냈고 1983년까지 중국 요녕성 신변현에서 살았던 김영철이란 분의 증언입니다. 고동뢰 살해범으로 쫒기게 된 김성주는 결국 숨을 곳을 찾아다 마침내 푸르허라는 마을에 들어가 김일룡이란 사람의 조카인 송창일의 머슴으로 가장하고 숨어있게 됩니다.

그런데 김성주는 운이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한 달 뒤 현익철이 심양에 회의하려 갔다 오다가 일본 영사관에 체포된 것입니다. 체포 소식이 동아일보에도 실렸을 정도로 현익철은 유명했습니다. 총사령이 체포되자 김성주를 쫓던 조선혁명군 특무대는 철수하게 됐는데, 이렇게 되어 스무 살 김성주의 푸르허 머슴살이도 한달 남짓으로 끝나게 됐던 것입니다.

북한이 김일성의 위대성이라며 선전하는 푸르허 마을 머슴살이의 진실은 바로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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