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날아온 무인 정찰기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4.04
paju_spying_plane-305.jpg 지난달 24일 파주에 추락한 북한의 무인정찰기.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달 31일 백령도에서 파란 색깔의 작은 모형 비행기 하나가 발견돼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도 파주에서 모형비행기 하나 주었거든요. 둘 다 길이 1.5m에 너비는 날개까지 해서 2m 정도 됩니다. 안에 한 1000달러 정도 주면 살 수 있는 일본제 카메라 하나가 들어 있었고 거기엔 사진 한 200장이 찍혀 있습니다. 바떼리를 보니 ‘기용날자’ ‘사용중지 날자’라고 적혀 있는데 여기선 날자를 날짜라고 쓰다 보니 곧바로 북한 것인 게 드러났습니다.

파주에서 발견된 건 청와대까지 날아와 사진 찍고 돌아가다 고장이 나서 떨어진 것 같고 백령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낙 작으니까 여기선 발견도 못했고 부랴부랴 이제부터 1m짜리 작은 비행기도 감지하는 레이더를 설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정도의 모형기는 여기서 동네 철물점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군대가 쓰는 정찰기라고 보기엔 너무 수준이 떨어집니다. 세상에 어느 정찰기가 사진을 찍고 즉시 전송하지 다 찍고 다시 돌아갑니까. 더구나 가던 길에 떨어졌다는 것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죠.

여기 사람들은 집에서 컴퓨터로 미국 위성이 찍은 지구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는데 북한 김정은 집무실을 포함해 어느 곳이나 손금 보듯 다 보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힘들게도 무인기로 사진을 찍어야 하니 안쓰럽군요. 한국 사람들이 인터넷에 북한 무인기 기사가 올라오자 “북한에서 쓰레기를 좀 남쪽에 버리지 마”, “무인기가 배가 고파서 탈북했구나” 이럽니다. 미국 언론들은 박물관 골동품이 날아왔다고 합니다. 물론 돈이 없으니 그 정도만 만들어도 북에선 대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남쪽까지 날아가는 모형기 만든 게 어디냐 이럴지 모릅니다.

그런데 요즘 무인기는 엄청 발전돼 있습니다. 미국이 F-35 스텔스기를 개발한 뒤 “사람이 타는 비행기는 이게 마지막이다”고 했답니다. 앞으로는 사람이 비행기 몰고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조종하는 무인기가 전투도 하고 폭격도 하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입니다. 무인기는 정찰부터 폭격까지 못하는 일이 없는데, 글로벌호크라는 여러분들도 아는 무인정찰기는 한번 뜨면 최대 42시간 동안 2만m 상공에 머무르면서 평안남도만한 지역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모조리 잡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도 4년 뒤에 글로벌호크 4대를 미국에서 사오기로 했습니다.

어떤 무인기들은 미사일을 두 개 정도 달고 떠 있다가 제거해야 할 표적을 발견하면 발사합니다. 요즘 중동에서 수많은 이슬람 테러분자들이 길을 가다가 소리 없이 날아온 미사일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 지도부도 이런 무인기가 제일 무서울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북한이 보낸 무인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것보다 더 나은 것도 기술자 몇 명 모이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폭탄이나 삐라를 장착해 무슨 기념식 할 때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날려 보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북한이란 거야 사실 지도부를 없애버리면 끝나는 나라 아닙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안하는 것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남쪽에는 건질 것이 하나도 없는 거지가 된 북한을 끌어안았다가 우리도 같이 망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북에서 사람들이 살기 어려우면 신세 한탄하면서 “전쟁이나 콱 나라” 하는데 여기선 절대 전쟁할 생각 같은 것은 꼬물만치도 없습니다. 가만있어도 잘사는데 뭘 전쟁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로 몰래 무인기 만들어 평양에 보내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나중에 탈북자 중에서도 돈을 모아서 그렇게 할지도 모르죠.

작은 사건이 역사를 바꾼 적은 많은데 대표적으로 쏘련이 붕괴된 것도 독일 청년이 모스크바까지 경비행기를 몰고 갔던 사건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7년 5월 28일에 비행클럽에서 조종기술을 배우던 19살짜리 독일 청년이 냉전을 중단시키는 평화의 가교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애인까지 태우고 모스크바로 날아갔습니다.

당시 나토와 대치하고 있던 소련은 모스크바 주변에 레이더 1만개, 요격전투기 4,000여대, 지대공 미사일 1만4,000여발로 엄청난 방공망을 구축했습니다. 그런데 그 방공망이 단 1만6000달러짜리 프로펠러 경비행기에 의해 뚫렸습니다. 물론 소련 미그기가 발견하고 다가갔지만 민간 경비행기니 격추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그 청년은 붉은 광장에 보란 듯이 비행기를 착륙시켰죠. 거기에 폭탄이 채워져 있었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냉전시대 소련의 자존심이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을 구실로 고르바초프는 개혁개방에 반대하던 군 간부 2000여명을 사임시켰고, 보수적인 군의 저항이 없어지니 개혁개방은 더욱 빨라졌고 소련은 몇 년 뒤 무너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그 독일 청년을 진찰하고 “정신이 정상은 아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상이 아닌 사람이 독일에만 있겠습니까. 한국에도 그냥 취미삼아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비행기가 그냥 차 한대 값이거든요. 비행기가 남과 북을 왔다갔다하는 사건이 많이 날수록 이것이 계속 화제가 될 것이고, 어느 날 누군가가 자가용 비행기에 폭탄 채우고 김일성광장에 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북에서 남쪽에 비행기를 날려 보내면, 기술이 훨씬 발전한 여기서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어지겠죠. 그러니까 조잡한 모형기로 자꾸 장난치면 결국 북한만 손해다 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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