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의 명절 증후군과 북한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6.04.08
chuseok_table-620.jpg 추석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실향민 가족이 북쪽을 향해 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명과 한식에 조상묘 다녀오셨나요. 요즘 70일 전투라고 달구는데 그런 와중에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즐거운 추억을 쌓는 계기가 됐기를 바랍니다.

제가 남쪽에 와서 배운 말 중에 명절 증후군이란 말도 있습니다. 명절을 보내면서 겪은 정신적, 육체적 부담감 때문에 명절 뒤에 우울해지고, 잠도 잘 안 오고, 위장장애와 소화불량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북에서 들으면 “아니, 가족, 친척이 모여서 그 좋은 명절을 보내고 난 뒤에 앓는다고? 우린 매일 명절이 됐으면 좋겠는데, 이게 무슨 괴이한 말이냐, 참 남조선 이상하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북에서 명절 후 증후군이라면 아마 다시 일하려 나가야 하는 끔찍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은 일하는 평일보다 오히려 명절을 쇠고 앓는다니 참 이상하죠. 그런데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명절에 평소보다 더 정신적으로 괴롭다는 사람이 열 명에 일곱 명이나 됐습니다. 북한이라면 명절 증후군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죠. 물론 한 10년 남쪽에서 살면 또 북한 시절을 잃어버리고 여기 사람이 돼서 명절 증후군을 앓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남쪽 사람들이 느끼는 정신적 부담감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명절 때 제일 괴롭히는 게 뭔지 조사하니 경제적 부담이라고 합니다. 경제적 부담이라고 하면 세뱃돈과 설 선물비용 때문에 고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는 명절이면 대개 부모님 집에 자식까지 다 데리고 3대가 모이는데, 수십 명이 훌쩍 넘기 일쑤입니다. 내게 세배하는 조카들이 대여섯 명만 되면 백 딸라 훌쩍 나갑니다. 또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께 선물을 사가면 또 몇 백 달라가 나갑니다.

매달 월급 받고 사는 입장인데 명절 때 목돈이 나가면 그 달은 허리띠를 조이게 되겠죠. 이렇게 돈을 쓰고도, 올케, 시누이가 나보다 더 좋은 선물을 가져 왔을까 비교가 돼서 걱정이고, 아이들 세뱃돈을 적게 줄까봐 걱정이고 그럽니다. 그게 신경이 쓰여서 힘들다는 게 명절 증후군입니다. 이런 일이 북에선 안 벌어질까요. 사람 사는 세상인데 똑같지요. 다만 북한 사람들은 워낙 더 큰 고생을 하다보니 이 정도는 고민 정도에 끼지 않을 뿐입니다.

명절 증후군의 둘째 이유를 보면 남자는 운전이고, 여성은 음식을 장만하는 것입니다. 명절에 서울에서 멀리 전라도 끝까지 운전 하노라면 보통 6~7시간 훌쩍 걸립니다. 그거 운전해서 갔다 왔다 하면 남자들은 물론 가족까지 피곤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한 거리를 가려면 3~4일은 훌쩍 걸리는 북한 사람들이 들으면, 자기 차를 몰고 앉아가면서도 고생이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저도 평양에 있는 대학을 다닐 때 기차 타고 3~4일은 기본으로 걸렸는데, 워낙 사람들이 꽉 차 있어 3일을 꼬박 서서 간적도 있습니다.

며느리들은 명절음식 준비를 하느라 녹초가 된다 이런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다 보면 여럿이 함께 해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다 먹은 그릇이 또 산더미처럼 쌓이면 또 설거지 하는데도 한참 걸리죠. 하지만 그것도 북한 며느리를 데려다 놓으면 “애개개, 맨날 이렇게 음식 만드는 것도 아니고, 1년에 한두 번 이 정도도 못 견디냐. 어마, 쯧쯧~”할지 모릅니다.

예, 그것도 남쪽 여성들이 평소에 북한에 비해 호강해서 그렇습니다. 여기는 상점이나 시장에 가면 다 다듬어진 식재료들이 넘쳐 있고, 그걸 가져다 쉽게 음식을 만듭니다. 북한 주부들이 와보면 남쪽은 천국입니다. 북한처럼 음식 재료 날 것으로 처음부터 가공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처럼 부엌에 불 때고 연기 나와 눈물 콧물 흘리지도 않고, 가마 하나로 밥도 하고, 국도 하고, 지짐도 굽고 그러지도 않습니다. 스위치 딱 돌리면 가스불이 나오고, 음식 설거지도 전용 세제로 쓱쓱 바로 끝냅니다. 그마저도 집에서 요리하기 싫어 아예 음식을 사먹는 집도 많습니다. 이런 남쪽 여성들에게 수십 명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북한으로 치면 아들 장가보내는 잔치를 하는 것처럼 여길지 모릅니다.

그나마 남쪽은 젊은 사람들은 아내의 일을 많이 돕습니다. 20~30대 여성의 경우 60% 이상이 남편이 가사를 적극 돕는다고 대답하는데, 40~50대 주부는 40% 정도만 남편이 주방 일을 돕는다고 대답했답니다. 남존여비 사상 하면 북한이 엄청 심각한데, 북한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아내의 가사 노동을 좀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자식들도 나름 고민이 있습니다. 처녀 총각이라면, 수십 명의 친척들이 일일이 “넌 언제 장가가니” “애인은 있니, 올해 안에는 시집을 가야지” 이러고 한마디씩 하면 엄청 괴롭다는 것입니다. 누군 뭐 결혼하고 싶지 않아 안갑니까. 인연이란 것이 그렇게 덜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아이들도 명절이 괴롭답니다. 가령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삼촌이 “넌 공부 잘하니”하고 물어보면 쥐구멍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거기에다 엄마가 “야, 너 사촌형은 이번에 최우등 했대. 그런데 넌 뭐니”하고 핀잔하면 망신스럽겠죠. 남이나 북이나 아이들은 남들과 비교해서 상처 주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모여서 설 명절이 지나면 열에 일곱 명은 명절 증후군을 앓는답니다. 그런데 위에서 든 사례가 북한이라고 전혀 없진 않겠죠. 하지만 남쪽 사람들은 앓고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맨날 명절이었으면 합니다. 그건 북한이 그만큼 살기 척박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거 말고도 괴로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북한도 하루 빨리 명절에 상다리 부러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명절 증후군을 앓는 세상이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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