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몽둥이 휘두른 북 어민들의 본심은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4.11
nll_fisherman_interview-305.jpg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한국 해군에 나포됐다가 송환된 선원들이 지난달 2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남측이 강제로 납치해 폭행하고 귀순을 강요했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 봄은 유난히도 빠릅니다. 4월 초에 서울에서 벚꽃 축제가 열렸는데 올해는 꽃이 열흘이나 빨리 폈습니다. 평소 같으면 꽃이 필 때인데 올해는 벌써 집니다. 4월 1일에 제가 모기를 잡기도 했습니다. 보통 벚꽃 축제는 남쪽에서 시작해 서울까지 오노라면 열흘 정도 걸리는데 올해는 서울하고 남해인 경상남도 진해의 벚꽃 축제가 거의 시기가 같았습니다. 해마다 갈수록 봄은 빨리 오는데, 남북관계엔 언제 봄이 올지 기약이 없네요.

지난달 30일 북한 어민 3명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조선에 가서 쇠몽둥이로 얻어맞고 군홧발로 짓밟혔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동신문에도 천인공노할 깡패 행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니 여러분들도 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방송 들으시는 분들 정도면 북한 기자회견 같은 것이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 정도는 다 아실 겁니다.

그때 쇠몽둥이 구타 사건도 알고 보면 경위는 이렇습니다. 지난달 27일에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한의 배 한척이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여기 해군 경비정이 나가서 “빨리 돌아가라”고 확성기를 불다가 안돼서 북한 쪽에 대고 “고장 났으면 북한 경비정이 와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국 해군이 어선에 타려 하는데, 북한 어민들이 횃불과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을 체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옛날 무사들이 칼싸움 하듯이 공격과 방어를 하다가 우르르 밀려들어가 잡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해군은 영해를 침범해 불법 고기잡이를 하는 중국 어선들을 잡는데 이골이 나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중국 어선들도 잡히면 벌금 몇 만 달러씩 내야 하니까 쇠몽둥이는 물론, 도끼와 삼지창까지 휘두르며 죽기 살기로 저항합니다. 이런 중국 어민들에 비하면 북한 어부 3명이 무슨 대단한 저항을 했겠습니까. 해군은 쇠몽둥이를 휘두르지 않고, 이럴 때 쓰는 진압봉이라고 장비가 따로 있습니다. 그걸 써서 북한 어민들을 제압하고 묶었죠. 간첩인지 어부인지 모르니 일단 수갑을 채우고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조사해 보니 기관이 고장 나서 표류해 온 것이니 물과 식량을 주고 초코파이까지 줘서 바로 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조사할 때 남쪽으로 귀순한 거냐 아님 돌아갈 거냐 물었을 것이고 돌아가겠다고 해서 바로 몇 시간 내로 돌려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두고 “한국 해군이 마구 내리치는 쇠몽둥이에 맞아 먼저 기관장이 실신했고 선장도 쇠몽둥이에 머리와 잔등을 얻어맞고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의식을 차리고 보니 귀순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저는 북한에서 살았으니 저들이 왜 저렇게 해야 했는지 그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정신 잃을 때까지 맞서 싸웠다고 해야 돌아가서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고, 잘하면 표창까지 받을지 모릅니다. 여기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의 행동을 잘 이해 못합니다. 바로 거기서 살았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암묵의 룰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1990년대 정광선이란 병사가 배가 표류해서 남쪽에 내려왔다 돌아가서 군관으로 출세했고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때 노동신문이 한개 면을 털어 쓰기를 정광선이는 의식을 잃을 때까지 노를 휘두르며 괴뢰군 놈들과 맞서 싸웠고 귀순 의사를 당당히 뿌리쳤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걸 본 북한 주민들은 다 알게 되는 것이죠. 아하, 남쪽에 표류해가면 저렇게 의식을 잃을 때까지 뭘 휘두르며 저항해야 하는 구나고 말입니다. 이번에 표류했던 어민들은 이런 룰을 잘 따른 것입니다. 최전연 옹진 어부들이니 평소 이런 사태에 대비해 교육도 받았겠죠.

법으로 제정된 것은 아니지만 상벌로 주민들에게 사실상의 교육이 되는 룰은 북한에 참 많습니다. 실례로 김정일 사망 때 평양 시민들이 눈 오는 도로에 외투를 벗어 덮은 행동을 여기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알겠더군요. 김일성 사망 애도기간 때에 제가 평양에 있었는데 그때 김정일이 비 오는 날 차를 타고 만수대동상 앞을 지나가다 김책공대 학생들이 교복을 벗어 화환이 비를 맞지 않게 들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김정일이 “참 훌륭한 대학생입니다”고 해서 모범사례로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렸죠. 사람들은 그때 “참 운도 좋은 놈들이다”고 부러워하면서도 “앞으로 비가 오면 화환은 옷으로 덮어야 하겠구나”는 것을 다 알게 된 것입니다. 김정일 사망 때는 비가 오지 않고 눈이 왔긴 했지만 옷을 벗어 덮는 행동은 습관화된 것이니 그리 한 것이겠죠.

벌을 통해서도 교육이 되는데, 가령 화재 시에 초상화를 들고 나오는 대신에 텔레비를 들고 나왔다 이러면 그 사람 잡혀갑니다. 그걸 보면서도 사람들은 아, 불이 나면 초상화부터 들고 나와야겠구나 이런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번에 어민들이 쇠몽둥이를 휘두르다 보니 좀 거칠게 다뤄진 것인데 미국에선 이랬다가는 총에 맞아 죽습니다. 북한도 2012년에 중국 배 3척을 나포해 어민들을 때리고 굶기고 거기에서 한발 더 나가 배에 걸린 중국 국기를 걸레로 쓴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 사람들이 분노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북한이 그때 중국에 찍소리 못하고 사과했죠.

이달 4일에 북한 무역선이 제주도 앞에서 침몰해 2명만 구조되고 14명은 사망했습니다. 한국이 구조신호를 받고 바로 달려갔기에 2명이라도 건진 것인데 모두 치료해서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습니다. 여기는 나름 인도주의를 지키려 합니다. 북한이야 말로 남쪽 어선을 잡아서 남쪽의 절반만큼이나마 대해 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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