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죽어버린 북한의 현실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4.18
propagenda_painting_view-305.jpg 평양국제문화회관에서 주민들이 선전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가 남쪽에 오기 전에 대한민국에 대해 갖고 있던 정보는 조선업이나 반도체 자동차가 세계적 수준이다 이런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요즘 들어 비단 경제력에 뿐만 아니라 문화적 파워에서도 세계적으로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재작년에 싸이라는 가수가 전 세계 최고 유행곡 1~2위를 다투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말로 된 노래를 전 세계인들이 따라 불렀던 것이죠. 과거 1960~70년대엔 한국은 일본의 문화를 모방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가면 사람들이 수만 명씩 몰려듭니다. 한국 가수 보겠다고 비행기 타고 일본에서 날아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동남아 지역에서도 한국 걸그룹이나 인기 가수들이 가면 거기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밀려옵니다.

요즘은 인구 13억의 중국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해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수천 년의 유구한 문화적 전통이 있기 때문에 과거 자기들의 속국 정도로 보았던 한국에 대해 문화적 우월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 드라마들이 진출하면서 중국의 문화적 우월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한국에서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방영됐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400년 살면서 한국 여배우와 사랑한다는 황당한 설정임에도 한국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냐 하면 드라마 주인공을 다섯 시간 중국에 오게 하는데 초청비만 100만 달러씩 쓸 정도입니다.

지난달 왕치산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겸 중앙규율검사위원회 서기가 공개석상에서 이 드라마를 극찬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베이징 대표단 앞에서 ‘별에서 온 그대’를 봤냐고 묻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드라마가 왜 중국을 점령하게 됐는지, 또 미국, 심지어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봤다. 나도 가끔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드라마의 핵심과 영혼은 전통문화의 승화이다. 중국 예술계가 이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상무위원까지 인정한 이 드라마가 정작 중국에선 티비에서 공식 상영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티비 상영 규정에는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공개적으로 방영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개혁개방을 한지 40년에 가까워 오는 중국도 저런 규제를 아직도 갖고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곧바로 북한을 떠올렸습니다. 북한 예술도 엄청난 족쇄를 차고 있습니다. 북한의 모든 예술은 주체예술론이라는 김정일이 서른 몇 살 때 썼다는 이론에 아직도 근거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만 봐도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에 근거해 만들어지고 있고 이를 어기면 작가가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습니다. 영화예술론이 발표된 것이 1973년 4월 11일이니 딱 41년이 됐습니다. 세계 예술은 계속 진화하는데 북한은 과거의 케케묵은 곰팡이 나는 지침서를 그러안고 죽어버렸습니다.

대표적 실례를 들면 한국에 와보니 삼각연애가 엄청나게 많이 그려집니다. 이건 뭐 삼각연애가 없으면 드라마가 만들어지지 못할 정도여서 저도 정도가 좀 심하다 생각하지만, 아무튼 인간생활을 재미있게 그리려면 아주 필수적 요소임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들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봤겠으니 아마 잘 아실 겁니다.

북한은 1980년대 말 영화문학 작가 리춘구가 ‘심장에 남는 사람’을 쓰면서 삼각연애를 암시하는 내용을 살짝 넣으려 했다는 이유로 지방에 혁명화 내려가 완전히 매장됐습니다. 삼각연애를 그린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둘이 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볼 여지를 주었다는 그 이유로 북한에서 받을 수 있는 명예는 다 받았던 최고의 작가가 그냥 매장됐으니 후배들이 무서워 다신 그런 것을 시도하겠습니까.

심지어는 키스나 포옹도 안 됩니다. 1980년대 중반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철길을 따라 천만리’란 영화에서 두 연인들이 대동강에서 보트를 타다가 키스를 하려 하는 것처럼 얼굴을 가까이 붙이다가 양산으로 싹 가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때 그것만으로도 북한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북한에 납치돼 갔던 신 감독이 다시 북한에서 탈출한 뒤론 북한 작가들은 그런 것을 쓸 엄두도 못 냅니다.

아니, 북한이 뭐 이슬람 국가입니까. 삼각연애도 안 되고, 키스나 포옹도 안 되고, 어쩌다 등장하는 부정인물은 당 간부는 안 되고 부기사장이나 부지배인 같은 행정인물만 돼야 한다는 이런 소소한 규정까지 있으니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거죠. 김정일이 40년 전에 누군가를 시켜서 쓰게 했을 영화예술론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북한 예술을 속박해야 합니까.

종교 교리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정에 맞추어 영화를 만들다 보니 북한 영화는 내용이 똑같습니다. 주인공이 당 정책 관철에 적극 나서지 않는 ‘부’자가 붙은 간부와 투쟁해서 이기고 사람들을 감동시키면 마지막엔 남모르는 충성심을 김정일이 알아줘서 평양에 불러 기념사진 찍어줬다는 것으로 끝나죠. 그리고 이런 영화가 나오면 전 국민을 모아놓고 주인공을 따라 배우자고 영화 실효모임이란 것을 엽니다. 이게 뭡니까.

그렇게 수십 년 영화를 통해 교육했음에도 실제 현실은 어떻습니까. 당 간부가 앞장서 부패해 뇌물 받는 데선 제일이고 역전엔 매음행위를 하는 여자들이 눈에 띄고, 사회공중 도덕은 바닥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현실을 담지 못하는 예술은 죽은 예술입니다. 그래서 북한엔 지금 예술이 죽어버렸습니다.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의 문화와 죽은 시체를 예술이라고 붙잡고 있는 북한, 이것 역시 남과 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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