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와 ‘태양 아래’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6.04.22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새 ‘태양의 후예’라는 제목의 드라마, 즉 연속극이 세계적 인기인데, 이게 벌써 북한까지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밀수품을 넘겨받아 건네주는 국경경비대 군인들부터 열광하고 있다고 하던데 드라마 한 편이 중국돈 30원에 거래된다면서요. 노동자 월급이 5,000원, 그러니까 인민폐 4원 정도인데, 드라마 한 편이 정말 비싸기도 하네요. 8부까지 절반 분량이 담긴 USB는 인민폐 180~200위안에 거래돼 예전에는 도강할 때 인민폐 200원 정도 뇌물 줘야 했지만 이제는 USB 하나만 건네주면 강을 건널 수 있다고 하네요.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주인공 송중기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 '우주의 후예'가 중국 인터넷에 등장했다. (사진-바이두 캡쳐/연합뉴스 제공)
한국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주인공 송중기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얼굴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 '우주의 후예'가 중국 인터넷에 등장했다. (사진-바이두 캡쳐/연합뉴스 제공)
사진-바이두 캡쳐/연합뉴스 제공

드라마를 본 경비대원들이 “아, 그랬지 말입니다”라는 말투를 놓고 “남조선이 인민군대 말투를 베껴갔다”고 난리친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근데 그 말투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국군이 사용하는 말투입니다. 그러니까 국경경비대에서 “말입니다. 말입니다”하는 말투는 남조선에서 옮겨온 말인거죠. 군관 아내들은 유시진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돌아다닌다는데, 정작 서울 사는 저는 시간이 없어 태양의 후예를 4부까지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재미는 있더군요.

이 드라마가 남쪽에서도 인기가 좋아서 아내가 그 드라마를 보는데 남편이 딴 통로를 돌렸다가는 부부싸움이 난다고 합니다. 한국은 가정에서 남자들이 여자에게 잘해주는데, 그럼에도 아내들이 드라마 주인공에게 반할 정도니 북한 여성이라면 정말 눈이 돌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남주인공이 잘 생겨서 여성들이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태양의 후예는 요새 중국에서도 난리가 아닙니다. 지난달 중순 중국 공안부가 이 드라마에 대해 안전을 경고하기도 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경고한 이유가 이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송중기에 대한 상사병에 걸려 여러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거랍니다. 사회적 문제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여성들이 남편에게 드라마 주인공처럼 왜 못 해주냐 불만이 커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는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요새 중동과 유럽 등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작년에는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중국을 휩쓸었습니다. 거의 매년 한국 드라마가 세계의 화제가 되는데, 반대로 중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가 이처럼 인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걸 보면 우리 민족은 문화적 감수성이 뛰어난 민족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남쪽에서 만든 태양의 후예가 이처럼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요새 국제사회에선 북한에서 촬영된 ‘태양아래’라는 기록영화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태양의 후예와 태양아래. 남쪽 드라마와 북한을 다룬 기록영화. 제목도 비슷하고 배경은 서울과 평양이라 멀지 않습니다. 태양아래는 러시아 감독이 북한 당국의 촬영 승인과 협조 하에 찍은 겁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정말 잘 만든 작품입니다. 북한에서 살다 온 제가 보기에도 북한의 속살을 너무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소름끼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영화의 주인공은 금성학원에 다닌다는 리진미란 8살짜리 소녀입니다. 아버지는 피복 공장 노동자, 어머니는 우유가공 공장에서 일한다고 하는데, 주체사상탑이 보이는 넓은 아파트에서 삽니다. 집안의 가구도 고급스러운 게 중앙당 간부집 같습니다. 기록영화는 잔잔하게 이 모든 것이 거짓이고, 이들의 집도 촬영용 가짜라는 것을 폭로합니다. 가령 감독은 촬영이 끝난 뒤에 몰래 카메라를 끄지 않고 살짝 자리를 뜹니다. 그러면 이때라 생각한 북한 간부들이 달라붙어 아이에게 웃음은 어떻게 짓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다 가르쳐주는 내용이 고스란히 영상에 잡힙니다.

안내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부엌으로 들어가 식장을 열어보니 식기와 조미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멋있는 집이 실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인 것입니다. 영화 촬영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자, 여덟 살짜리 소녀가 카메라를 향해 더없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아빠가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고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준비된 대사를 마치자마자 소녀 얼굴에서 거짓말처럼 웃음이 사라집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안내원들은 감독에게 달려와 몇몇 부분을 삭제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몰래 계속 돌아가 그 장면도 다 담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외국 감독의 손으로 북한 체제에서 학생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선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송곳을 보자기에 감출 수 없다는 것이 딱 이 영화를 두고 한 속담 같습니다. 북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그 독재체제가 어린 동심을 어떻게 세뇌시켜 독재자의 노예로 키우는지를 고발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러시아 감독이 “진미야, 소년단에 입단했는데 이제 자기 일상에 대해 무엇을 기대해요”하고 물으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조직생활을 하면 경애하는 원수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웁니다.” 이게 8살짜리 아이가 할 이야기입니까. 진미도 서글픈지 이 말을 하고 웁니다. 감독이 “좋은 것에 대해 생각해봐” 하니 “좋은 것 잘 모릅니다”고 대답합니다. 이런 장면이 시청자들을 울게 합니다. 동심을 빼앗고 노예를 만드는 세뇌. 그것이 어제의 제가 살았던 삶이고, 오늘날 진미가 이어받아 사는 삶입니다.

북한은 국제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호평을 받자 당장 상영을 취소하라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기만 높아지고 전 세계에서 상영 요청이 잇따릅니다.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태양의 후예, 그리고 세계를 울리는 태양아래. 이것이 바로 오늘날 극명하게 대조되는 남과 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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