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쪽의 가난한 비만과 북쪽의 간부 비만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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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대성구역 종합식당 조리사들이 영양가 높은 연두부를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엔 농촌 동원에 나가 식전작업에 내몰릴 때군요. 남쪽엔 식전작업이란 말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식전작업이 제일 싫었습니다. 새벽마다 힘든 몸을 일으켜 눈을 겨우 뜨고 새까만 어둠 속에서 줄서서 포전으로 향하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새벽에 무릎까지 빠지는 논에 들어가 모춤 만들기를 한두 시간 하고 다시 아침밥 먹으려 식당에 갔다가 또 일 나오고…. 가끔은 거기에 야간작업까지 한다고 그러고…. 모내기 때마다 전국적으로 수백 만 명이 과거의 저처럼 식전작업에 끌려 나가는 것을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힙니다. 5~6월의 북한 주민들은 철로 만든 기계보다 못한 살로 만든 기계일 따름이란 생각이 듭니다. 식전작업을 하면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아침밥이 꿀맛처럼 단 것이죠. 그런데 밥이 없는데 달아봐야 뭐합니까.

서울에서 살게 되니 아침밥을 먹게 되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어디 밥맛이 납니까.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기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지난해 한국 1인당 쌀 소비량이 71㎏이라고 합니다. 1년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겨우 195그램만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강냉이나 감자, 콩을 주식으로 먹는 것도 아니니, 결국 밥은 200그램도 안되게 먹는다는 것이죠. 여기 밥그릇 보면 북한 사람들이 보면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작습니다. 반면 북에선 하루에 밥을 최소한 600그램은 넘게 먹어야 합니다. 그 정도 먹어야 하루를 유지하죠. 결국 1인당 쌀 소비량은 북쪽이 남쪽보다 3배나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상입니다. 여기선 쌀을 먹지 않는 대신 밀가루도 많이 먹고, 간식, 기름 고기 이런 것도 많이 먹습니다. 칼로리를 유일하게 밥에만 의지해서 섭취하는 북한 주민들과 달리 여기 사람들은 쌀이 아니더라도 칼로리를 섭취할 데가 많은 것입니다. 저만해도 북에서 기숙사 생활할 때 대여섯 명분 밥을 한 끼에 다 먹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기숙사 밥 량이라는 것이 아주 적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여섯 명분 합쳐놓으면 작은 것도 아닙니다. 그랬던 제가 서울에 와선 한 끼에 아주 작은 공기밖에 먹지 않습니다. 배가 줄어들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몇 년 만에 배는 간부 배처럼 나왔는데, 이상하게 밥은 많이 먹게 되지 않더라고요.

가만 생각해보면 배에 기름이 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대학 때 저의 학급 자가생들은 다 부잣집 자식들인데 가끔 자가생 집에 가서 밥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부잣집에 가면 공기로 밥을 먹습니다. 기숙사생이 왔다고 배가 고프겠다고 밥을 가득 퍼서 주는데 아무리 곡상으로 담아도 공기는 공기죠. 그거 다 먹으면 또 먹으라고 퍼서 주는데 두 그릇까진 먹어도 세 그릇부턴 나도 부끄럽고, 주는 쪽도 어떠해서 또 먹으란 말도 못합니다. 마음 같아선 세 그릇 네 그릇도 먹을 것 같지만 사람이 자존심은 있으니 두 그릇까지만 먹는 거죠. 물론 자가생 부모 중에서 어려서 고생한 분이 딱 한분 있었는데, 이분 집에 가면 그분도 예전에 저처럼 그런 경험을 했는지 밥을 공기에 주지 않고 큰 쟁개비에 퍼서 줍니다. 그러면 얻어먹는 사람도 그나마 부끄럽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고 살게 되니 가끔 예전에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부끄러웠던 기억들이 자주 생각납니다. 그때는 참 고생 많이 했었죠. 그 중에서도 배고팠던 기억과 일화들이 가장 깊게 오래 남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그런 배고픈 경험도 해봐야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배고프게 살면 안 되죠.

참, 지금 제가 서울에서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는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고기를 저는 마음대로 못 먹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싶을 때마다 먹으면 사람이 비만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기뿐만 아니라 기름진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인데, 가난한 나라에서 살면서 계속 배고프게 살던 사람이 부유한 미국으로 이민 와서 기름진 음식을 먹어 비만이 걸리게 되면 그냥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 비만에 걸리는 사람보다 심장병 등 성인병 발병률이 4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기름진 음식에 습관 된 사람보다 어려서 풀과 양곡을 주식으로 하다 커서 기름진 음식으로 식단이 변경될 경우 훨씬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제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죠.

북에선 배 나온 사람은 간부밖에 없습니다. 배는 기름진 음식을 맨 날 먹지 않으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북한 사람들은 쪽잠에 줴기밥을 먹고 다녀도 배가 나오는 줄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게 어떻게 하면 배가 나오는지 그것조차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반면 미국이나 한국 등 발전된 국가에선 가난한 사람들 중에 비만인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여기선 배가 나오면 자기 관리를 잘 못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살이 안찌기 위해 운동도 하지만 이게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됩니다. 그때마다 “이거 북에 가서 5, 6월에 농촌동원만 한번 갔다 오면, 특히나 식전작업만 한 달만 하면 쪽 빠질텐데”하는 생각을 합니다. 상상일 뿐이지만 저 뿐만 아니라 한국의 비만인 사람들 다 데리고 올라가 두 달 기간의 봄 농촌동원을 하고, 북에서 갈비뼈가 아롱아롱한 사람들은 반대로 남쪽으로 데려와 기름진 음식을 먹게 하고, 이렇게 하면 이쪽은 살 빠져 좋고, 저쪽은 살쪄서 좋고, 참 서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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