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대북정책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5.12
moonjaein_aids-620.jpg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비서실장 후보자를 발표한 뒤 후보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 남쪽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인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빼고 다른 이야기는 할 수가 없군요. 국민이 나라의 왕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몇몇 측근에게 의존해 정치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금 구속돼 감옥에서 재판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를 자처하면서 사실상 세습 왕조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김정은에 비하면 박근혜의 죄라고 해봐야 새 발의 피도 안 되겠지만 어쨌든 구속을 면치 못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도 이런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이런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2위와 압도적 차이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는 한편으로 9년간 이어진 보수정권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집권정당으로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던 당입니다. 햇볕정책을 강조하고 북한과의 경제교류가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당입니다.

이번에 당선된 문재인 후보도 대북정책 공약을 통해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대북 압박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교류도 병행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당선되면 전통적인 우방국가인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가 김정은과 대화를 하겠다고 말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문 후보는 공약을 통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는 물론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란 정책까지 내놓았습니다. 이건 뭐냐면 동해에선 금강산 원산, 단천, 청진, 나선을 남북이 공동개발하고 서해도 남포 신의주를 잇는 경제협력 지대를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말 북한 인민들이 잘 살게 되려면 남쪽에서 이런 후보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문재인 후보의 당선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점은 문재인 후보가 됐다고 당장 남북관계가 좋아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전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모두 문재인 후보 못지않게 남북의 교류협력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핵만 폐기하면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보다 3배 이상 잘살게 만들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핵만 폐기하면 수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로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고 있는 김정은이 걸림돌이 됐기 때문입니다. 핵만 폐기하면 바로 잘 살 수 있는데 김정은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이런 북한의 핵개발을 무시하고 북한과 통이 큰 경제교류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공약은 공약일 뿐 현실로 집행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북핵 폐기는 한국의 문제를 넘어 미국의 주요 정책적 목표가 됐기 때문입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오바마 정권과 달리 북핵을 폐기 시키겠다고 단단히 잡도리하고 달라붙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의 최대 후원자인 중국을 압박해 대북 지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엇서나가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중국 역시 미국과 싸우면 엄청난 정치경제적 피해를 보게 됩니다. 북한 때문에 중국이 잃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시진핑 중국 주석도 요즘 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북한 제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 중앙통신이 요 며칠 전에도 중국의 이름을 거론하며 망동이니 배신이니 하는 단어까지 쓰며 싸잡아 비난했습니다. 제 기억엔 북한이 중국에 이렇게 욕설을 마구 퍼부은 것은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언론이 또 화가 나서 북중 관계를 재설정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이나 북한이나 언론이란 것은 다 당의 목소리입니다. 지금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나쁘고,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면 북한은 말라 죽게 됩니다. 벌써 휘발유 값이 북한에서 막 뛰고 그러지 않습니까.

자,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올라섰다고 해도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에 엇서 나가면서까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랬다가는 미국이 배신감에 치를 떨어 한국을 압박할 텐데, 그러면 한국 경제도 피해가 큽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공약은 당장 지켜지기 어렵습니다. 아마 소소한 인도적 지원 정도는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북한의 핵폐기에 귀결되는 것인데, 김정은은 왜 핵을 폐기하지 않겠다고 저렇게 버틸까요. 과연 여러분들이 교육받는 대로 민족의 자주성 수호와 인민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서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북한이 개발하는 핵은 100% 김정은 개인의 세습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절대 북한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핵만 폐기하면 북한 인민은 부자가 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제가 확실하게 장담컨대 북한을 쳐들어갈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걸 한국이나 미국에 쏘고 침략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핵을 부둥켜안고 있을까요. 바로 북한 내부에서 인민봉기가 일어날 경우 궐기한 인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함흥이나 원산에서 봉기가 일어나면 김정은은 군대를 보내 그 도시를 아예 지도에서 사라질 정도로 인민들을 학살할 겁니다. 그걸 미국이나 한국이 보고 있을 순 없겠죠. 이때 외부에서 개입하면 김정은이 핵을 꺼내들고 우리 일에 참견하면 너희 땅에 핵탄을 쏘겠다고 협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계속 핵무기에 집착하는 한 아무리 한국이나 미국에서 우호적 정권이 들어서도 여러분들의 생활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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