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이 된 월남자의 아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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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왼쪽)이 대학 3학년 때 `법의 축전'이라는 이름의 법대 축제에서 만난 아내 김정숙과 동료와 촬영한 모습.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대학 3학년 때 `법의 축전'이라는 이름의 법대 축제에서 만난 아내 김정숙과 동료와 촬영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10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지금 새 정부 각료들도 새로 임명되고 있습니다. 제가 북에서 살 때 남쪽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저렇게 대통령까지 됐을까” 그게 몹시 궁금해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거의 저처럼 북에서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계실 분들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인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릴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거제도에서 실향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선 실향민을 월남자라고 부르죠. 문재인은 바로 흥남에서 월남한 부모를 둔 월남자 자식입니다.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일제 때 함흥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흥남시청 농업과장을 지냈습니다. 일제 때 고등학교면 지금으로 따지면 대학 나온 것과 마찬가지고 조선인이 또 고졸이면 집안도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농업과장 정도가 친일파까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일제 때 간부를 지낸 사람이 해방 후에 제대로 대접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역시 함흥 출신의 아내와 함께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군함을 타고 남쪽으로 월남했습니다. 그때 흥남에서 내려온 피난민 대다수가 배가 상륙한 거제도에 정착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아버지는 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 노무자로 있었고 이때 1953년 문재인을 낳았습니다.

전쟁이 끝나 문재인이 7살 때 이들 가족은 부산으로 옮겨 양말 도매상을 했습니다. 하지만 장사를 잘하진 못해서 그의 아버지는 빚만 잔뜩 졌다고 합니다. 문재인은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후나 휴일이면 어머니를 도와 연탄을 그루마를 끌고 배달했습니다. 그럼에도 공부는 잘했던 가 봅니다. 문재인이 대학에 갈 나이가 됐는데 돈이 없어 못 가자 맏누나가 취직을 해 동생을 뒷바라지 했습니다. 누나 역시 공부는 잘했지만 남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고, 문 대통령도 누나가 나를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학공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그런데 누나가 남동생을 위해 희생한 것은 문재인의 집안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그때 한국은 가난해서 집안에서 한 명을 대표로 대학에 보내고, 여자들은 대개 일해서 뒷바라지하곤 했습니다. 한국은 지금은 부자 나라가 돼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수십 년 전에는 수많은 누나들의 눈물과 피땀으로 남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문재인은 경희대 법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했는데 지금 1975년 유신독재가 시작되자 대학생 신분에 이에 맞서 시위를 하다가 잡혀갔습니다. 그리곤 군에 강제 징집이 돼서 북한으로 치면 특수부대인 항공육전대쯤 되는 특전사에 끌려갔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열심히 공부해 1980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판사가 되려니 감옥에 잡혀간 경력이 문제가 돼서 할 수 없이 변호사가 됐습니다.

바로 이때 문재인은 운명과 같은 사람과 만납니다. 바로 몇 년 먼저 변호사가 된 노무현 사무실에 들어가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2002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노무현은 오랜 벗인 문재인을 찾습니다. 믿고 맡길 사람이 없는데 네가 청와대에 와서 나를 좀 도와달라는 것이죠. 문재인은 원래 정치에 꿈이 없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2003년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두루 청와대 요직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말기에 비서실장까지 했습니다. 비서실장은 장관급입니다.

2008년 이명박 당선 후 문재인은 부산에 돌아가 변호사를 하다가 2012년 일명 친노라고 불리는 노무현 시절 한자리를 했던 세력이 그를 내세워 대통령 선거에 출마시킵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합니다. 이후 그는 변호사로 돌아가지 않고 정치권에 계속 남아서 민주당 대표 등을 지내다가 이번에 다시 선거에 나와 당선됐습니다. 이번엔 하늘이 도왔죠.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비리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대선은 올해 12월에 치러져야 했을 것이고, 그러면 보수 진영이 또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서 도전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비리에 실망한 국민은 촛불 시위로 박근혜를 끌어내렸고, 이어진 대선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문재인 후보가 가장 유리했습니다.

사실 한국을 쭉 둘러보면 능력이나 성품을 따졌을 때 문재인 대통령보다 훌륭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에 꿈이 없던 고지식하고, 사람 성품 좋은 문재인은 노무현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들어왔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대통령까지 됐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대통령은 하늘이 주는 자리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김정숙입니다. 북한에선 조선의 어머니 하고 언뜻 떠오르는 이름입니다. 김정숙 여사는 경희대 무용과에 다니다가 1년 선배인 문재인이 잘 생겼다고 누가 소개를 해주는 바람에 나가 만났다가 인연이 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자기 비서실장부터 발표했습니다. 과거 자기가 노무현 정부에서 지냈던 장관급인 그 자리죠. 그런데 비서실장에 누가 됐냐 하니 바로 임종석이 됐습니다. 예, 여러분들도 다 아는 1989년 평양학생축전에 임수경을 파견했던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입니다. 임수경은 지난번에 국회의원을 지냈는데, 임종석도 두 번이나 국회의원을 지냈고, 서울 부시장도 했고 이젠 나이가 쉰셋입니다.

과거 혈기에 차서 학생운동을 하던 모습이 아닌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정치인이 됐습니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이라도 해서 평양에 가면 임종석 비서실장이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문재인 시대엔 또 어떤 남북관계가 펼쳐지게 될까요. 저도 여러분들도 함께 기대해 봅시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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