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태권도와 세계의 무술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6.30
itf_demo-620.jpg ITF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28일 서울 강남구 국기원에서 화려한 시범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에 한국에 국제태권도연맹 북한 시범단이 방문했습니다. 북한은 남쪽 민간단체의 방북 요청을 다 막고 있는데 반해 한국 정부는 다 받습니다. 이번 시범단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한국에 온 최초의 북한 대표단입니다. 민족과 운명 홍영자 편을 본 사람이라면 세계 태권도계가 영어 약자로 ITF를 쓰는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과 WTF라는 약자를 쓰는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현재 올림픽에 태권도가 정규 종목으로 채택돼 있는데, 이건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 소관입니다. 아무래도 남쪽이 돈도 훨씬 많고 국제무대에서 친구도 많으니 당연한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자존심 상한 북한은 올림픽에 아예 태권도 선수를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 시범단이 온 이유는 전라북도 무주에서 제23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때문인데, 같은 태권도 계열의 국제태권도협회를 대표해 북한 시범단이 축하 공연을 왔습니다. 한 10년 전에도 똑같은 이유로 왔습니다. 이번에 온 시범단은 북에선 태권도를 제일 잘하는 남녀들일 겁니다. 이들은 송판 깨기나 강도 제압하는 그럴싸한 시범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제가 북에 있으면 감탄사가 나왔을 것인데, 하도 한국에 와서 액션 영화를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촌스럽게 보였습니다. 저 정도로 세계에서 통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다고 한국 태권도가 대단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솔직히 태권도 선수끼리 싸움 붙으면 북한 선수가 이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실제 사람을 때려 제압해야 하는 곳에선 특공무술이란 것을 배웁니다. 이 특공무술이란 것도 북한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1977년 8월 19일에 인민군 9사단 경보병대대에 있던 이영선이란 병사가 임진강을 헤엄쳐 넘어왔습니다. 그는 북에서 격술 대회에 대대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오니까 중앙정보부에서 북한 특수부대 실력을 보려고 한국 특수부대원들하고 싸움을 붙여봤죠. 그때까지 한국군에선 태권도를 무술로 배워줬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특수부대 대원 누구도 북한 경보 대대 병사 이영선을 도무지 이길 수 없는 겁니다.

이런 격술을 경보뿐만 아니라 정찰국과 교도대 등 인민군 특수부대는 물론이고 노동당 작전부 요원 등에게도 보급됐다고 하니 겁이 났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발차기 위주의 태권도로는 손기술을 중시하는 인민군 격술을 제압할 수 없겠다”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중앙정보부는 전국에서 무술을 제일 잘하는 장수옥이란 사범을 수소문해서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무술을 연구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개발된 것이 바로 특공무술입니다. 나중엔 특공무술을 보급한 대대에서 대원들을 선발해서 북한 대남공작원과 붙게 했는데 이겼습니다. 1983년에 부산 다대포란 곳에 북한 대남공작원들이 상륙했는데 먼저 들어왔다가 체포된 공작원에게서 정보를 들은 한국이 특수부대 매복시켰다가 때려잡았습니다. 대남공작원들도 꼼짝없이 당했죠.

이런 일화를 들으면 일단 태권도는 남과 북에서 동시에 체육으로 배워주지만 실전에서 쓰는 무술은 또 다르단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격술, 한국은 특공무술입니다. 그런데 이 무술 종류는 나라마다 다 다릅니다. 일본은 유도와 가라테, 중국은 우슈, 태국은 킥복싱, 러시아는 삼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럼 어느 무술이 제일 강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전문가들은 주짓수라는 브라질 무술을 제일로 많이 칩니다. 유술처럼 땅에 쓰러뜨리고 관절을 꺾어서 상대가 도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식의 무술인데, 걸리면 꼼짝없나 봅니다. 한국도 요새 주짓수 배워주는 체육관들이 슬슬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권도든, 권투든, 주짓수든 한국은 배워도 별로 싸울 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긴 그냥 때리면 때린 사람이 감옥에 갑니다. 치안이 좋으니까 싸울 일도 별로 없고요. 북한과 비교하면 사회가 전혀 살벌하지 않습니다. 저도 한국에 와서 15년을 살았지만 주먹 쓸 일이 거의 없어요. 주먹 쓰면 벌금 엄청 맞아서 자기만 손해죠.

국제무대에서 격투기 경기들도 열립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프로레슬링이 그런 것인데, 요새는 거의 보지들 않습니다. 역도산 시절이나 실전에서 싸우는 거였지, 이제는 다 서로 짜고 하는 눈속임이 많습니다. 그래서 뜨는 것이 종합격투기라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막싸움입니다. 여긴 특별히 무슨 기술을 쓰라는 것은 없고 태권도 하는 사람도 참가할 수 있고, 킥복싱이나 권투를 하던 사람도 참가할 수 있고, 거리에서 깡패하던 사람도 참가합니다. 천하의 고수를 고르기엔 아주 적합한 것이죠.

싸우는 것을 보면 북한 태권도 시범단처럼 그렇게 동작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때려눕히는 것이 목적이니 그렇게 세계적으로 뛰어난 싸움꾼들도 발 걸어 넘어뜨리곤 깔고 앉아서 때리고 아무튼 얼핏 보면 그냥 북한서 말하는 개싸움 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 태권도 사범들이 발 한번 올렸다간 그냥 잡혀서 바닥에 태를 치고 관절 꺾어서 꼼짝 못하게 제압할 것 같습니다.

이런 경기를 보면 기술보다는 체격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성이 유술 고단자라도 남자를 때려눕히기 어려운 것처럼, 아무리 태권도 기술이 뛰어나도 몸무게 100키로 넘고 온몸이 근육으로 꽉 찬, 맷집 좋고 힘도 장사인 서양인을 이기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점점 세계가 발전하면서 사람이 몸으로 싸울 일도 줄어듭니다. 제가 봉건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쨌을까 싶습니다. 몸집 좋고 힘 좋은 장수 밑에서 열심히 창 들고 다니는 게 고작이었을 텐데, 하도 좋은 세월에 태어나 인텔리로 사네요. 앞으로도 주먹 쓰고 싸움 잘하는 사람이 대우받을 일은 더 줄어들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세상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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