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헬조선 선전과 남쪽의 실제 현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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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린 '2017 은평 특성화고·청년 취업박람회'에서 고교생 참가자들이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 은평구청에서 열린 '2017 은평 특성화고·청년 취업박람회'에서 고교생 참가자들이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 북에 돌아가는 탈북민이 한두명씩 생기고, 북한은 이들을 내세워 남조선은 지옥이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북한 사람들은 “그 잘사는 남조선에 어렵게 가선 왜 다시 돌아왔냐”고 궁금해 할 것입니다. 남쪽에 온 탈북민들은 재산도, 인맥도 없고 북에 남겨 두고 온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도 싸우며 적응해야 합니다. 돌아간 사람들은 대개 돈을 마구 끌어다 빚을 많이 져서 쫓겨 다니다 부모형제가 있는 북한을 마지막 도망지로 선택하더군요.

여러분들은 “목숨 걸고 남조선까지 간 정신으로 무엇을 못하겠냐”고 반문하고 싶겠죠. 맞습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 3만 명 대다수는 그 정신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내다가 빚더미에 앉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북에서도 적응 못하고, 한국에서도 적응 못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여기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살기 만만한 사회는 아닙니다. 시장경제는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사회가 빠르게 발전합니다. 반면 모두가 국가의 주인이라는 북한은 경쟁이 없다보니 지금처럼 가난해지는 것이죠. 지금 남쪽에서 젊은이들이 현 상황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자조한다는 이야기는 노동신문이 남쪽을 비난할 때 단골로 나오는 말입니다. 헬은 지옥이란 뜻인데, 결국은 지옥조선이라고 부른다 이 말이죠. 실제 헬조선이란 단어는 분명히 있고 지난달에도 두 명의 교수들이 이를 두고 공개 논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북한 리과대학쯤 되는 카이스트라는 대학의 58세 교수가 글을 썼습니다. 요약하면 젊은이들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아라. 나는 초등학교 때 밭에서 김을 매고,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려 산으로 갔다. 커가면서도 정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며 살았다.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외국 가서 제일 힘든 곳에서 고생했고 아버지는 중동의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했다. 그래서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켰는데, 너희들은 그 덕분에 해외에 배낭여행을 다니고,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왜 불평을 하냐. 나약하게 우는 소리 하지 말라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1960~70년대는 남조선 사람도 정말 고생을 많이 했고, 정말 열심히 일해서 이만큼의 부를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대학가는 사람은 10% 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80% 넘는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 단군 이래 최대 고학력 사회가 됐습니다. 이 교수의 일갈에 동시대를 살아온 대다수 고령 세대는 물론 북에서 고생하다 온 탈북민 대다수도 아마 공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을 보다가 공감보다는 화가 났습니다. 마침 카이스트 교수와 나이가 비슷한 50대 후반 한양대 교수가 이 글을 ‘5000년 역사 최고 행복 세대의 오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70~80년대 매년 10% 가까운 고도 경제성장기의 대가를 톡톡히 받고 산 사람들이 후세대의 아픔을 함께 못하고 징징댄다고 타박하는 것은 오만 중의 오만이라는 것입니다.

1970년대는 대학만 나오면 지금은 수백 대 일의 입사 경쟁률인 공기업도 거들떠 안볼 정도로 직업이 풍부했습니다. 그런 이들이 지금 은퇴하는 지금쯤 자기 집값은 이미 백만 달러 넘게 불어났고 연금은 혼자 쓰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도 공감이 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부는 고생 속에서 살아왔다는 고령 세대가 거의 다 갖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했고, 지식도 비할 바 없이 높지만 돈도 일자리도 얻기 힘듭니다.

이 논쟁을 저는 약간 다른 시각에서 생각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자기 고생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객관적으로도 저 교수들보다 어려서 더 고생을 많이 했고 감옥도 여섯 개나 경험했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도 여러 번 걸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북한에서도, 자본주의 남한에서도, 그리고 두 제도가 공존하는 중국에서도 살았습니다. 이 정도면 저도 논쟁에 끼어들 체험은 좀 있습니다.

저는 카이스트 교수의 글을 보고 “저분의 자녀는 무엇을 물려받을까”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 한국은 부와 신분의 세습이 점점 고착화됩니다. 잘 사는 부모를 둔 자식들은 재산을 물려받아 잘 살 확률이 크지만, 가난한 부모를 둔 자식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확률이 점점 적어집니다. 부모가 좋은 직업이면 자식도 좋은 직업을 갖지만, 가난한 부모면 좋은 직업 갖기도 어렵습니다. 1960년대엔 모두가 가난했고, 모두가 열심히 하면 잘 살 확률이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모라는 배경을 젊은 세대가 혼자의 힘으로 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와 신분의 대물림을 북에서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북한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출신성분이 나쁘면 평생 농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분 세습에 분노했는데, 여기도 와보니 점점 부익부빈익빈이 고착되고 있더군요. 물론 북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점점 심해지는 방향으로 갑니다.

숟가락 하나 없이 온 탈북민은 남쪽에서 이런 상황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임대아파트는 받지만 아파트가 50만 달러 이상씩 하는 서울에서 자기 집 장만하긴 어렵습니다. 물론 그래도 북한보다는 훨씬 더 풍요롭고 굶주림과 거리가 멀게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남쪽은 분명히 천국은 아닙니다. 여기 와서 치열하게 경쟁해도 여기서 태어나 뭔가 물려받을게 있는 사람보다 잘 살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이 점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왕의 아들이면 왕이 되고, 중앙당 간부의 자식이면 중앙당 간부가 되는 봉건식 신분 세습제도가 버젓이 존재하는 북한보다는 훨씬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노동신문이 한국이 망한다고 떠들면, 북한은 그것보다 더 빨리 망해야 하는 것이 역사의 순리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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