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트럼프의 발언과 국방비 증가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09.22
trump_unga_speech1_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FP PHOTO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새 정세가 점점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193개국 수반과 대표들이 참가한, 지구상 최고 회의인 유엔 총회에서 충격적 연설을 했습니다. 지구의 수많은 의제를 다뤄야 하는 미국 대통령이 40분 연설 중 무려 5분이나 북한에 할애했고 그 수위도 역대 최고입니다.

일단 몇 문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만약 미국과 동맹을 방어하도록 몰리게 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 파괴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로켓맨-여기서 로켓맨은 김정은이죠, 로켓맨은 그 자신과 정권에 대한 자살 임무를 수행 중이다. 미국은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준비가 돼 있고 의지와 능력도 있지만 이것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인권 문제도 언급했습니다. “자국민의 안녕에 북한의 타락한 정권보다 더 많은 경멸을 보여준 이들은 없다. 북한 정권은 자국민 수백만 명의 아사와 감금, 고문, 살해와 탄압에 책임이 있으며 세계가 독재자의 형이 금지된 신경가스로 국제공항에서 암살되는 것을 보았다.” 또 북한을 ‘불량체제로 구성된 작은 집단’, ‘범죄자 무리’라고 이슬람국가급 테러단체처럼 취급하면서 “만약 올바른 다수가 사악한 소수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악이 승리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과거 트럼프는 김정은을 많이 욕했죠. 지난달에도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연설은 전 세계가 보는 유엔에서, 그것도 즉흥적 발언이 아닌 사전에 준비된 원고였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습니다.

“북한을 놔두면 악이 승리한다”는 대목을 특히 유념해야 하는데, 과거 미국 지도자들이 악으로 지칭한 나라는 몇 년 내로 망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 로널드 레간 대통령은 1983년 이번 트럼프의 연설과 비슷한 충격적인 연설을 했는데,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지칭하면서 “그들은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번 트럼프의 연설 수위가 충격적이어서 ‘중세시대의 협박 연설문’이란 비난도 받고 있는데, 그때 레간의 연설도 “원시적 연설이다. 소련을 혐오하는 강박관념의 표출이다. 역대 대통령 연설 중 최악의 연설이다” 뭐 이런 비난을 엄청 받았습니다. 하지만 8년 뒤 정말 소련이 붕괴되면서 레간의 연설은 역사적 연설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트럼프는 레간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란 점도 의미심장하죠.

또 2002년 당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이란, 북한을 대량살상무기를 생산하는 ‘악의 축’이라고 단죄했습니다. 이 연설 이듬해인 2003년 미국이 악의 축으로 맨 먼저 지목했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공격을 받아 처형됐죠. 그런데 이번 트럼프 연설에선 이라크 대신 북한이 맨 먼저 언급됐습니다.

지금 유엔엔 리용호 외무상이 와 있습니다. 원래 지도자가 와야 하는데, 김정일도 김정은도 미국에 올 배짱은 없는 것이죠. 리용호는 트럼프의 연설에 북한 주민들이 다 아는 “개들이 짖어도 행렬은 간다”는 말을 언급하며 “개 짖는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 짖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미국 같은 민주국가는 대통령이 전쟁을 함부로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대신 계속 명분을 축적합니다. 지금도 북한을 가리켜 “재 나쁜 놈이야. 없애야 돼, 없애야 돼” 이런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우연일까요. 그렇게 계속해 미국인과 세계인들이 어느새 “그래 저 놈은 나쁜 놈”이라고 각인됐을 때 “그래 그럼 없애버리자”하며 치는 게 순서인 것이죠. 그래야 명분이 있는 전쟁이 되는 것입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미국 고위 관료들도 계속 아찔한 발언을 합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도 18일 서울에 와서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군사 옵션이 있다”고 했습니다. “북한 쳐도 서울 괜찮으니 너무 불안해 하지마” 이런 뜻 아닐까요.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심상치 않은 발언을 쏟아내는데,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 해 미국에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말만 저리 하는 거 아닙니다. 레간이 소련을 말로만 ‘악의 제국’이라 지칭한 것이 아니라, 그 연설 이후 ‘우주전쟁’ 계획을 발표해 천문학적 군사비를 쏟아 부었습니다. 소련은 그런 미국과 군비 경쟁하다가 결국 돈이 떨어져 무너지게 된 것이죠.

트럼프 집권 후 미국 국방비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18일 미 상원 인준을 통과한 2018년 국방 예산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했던 6400억 달러에 상원이 600억 달러를 더 추가해 무려 7000억 달러가 됐습니다. 1년 전 미국 국방 예산은 5500억 달러였지만 트럼프는 집권하자마자 국방비부터 10%, 즉 540억 달러나 증액시켰고, 내년 예산을 다시 10% 늘였습니다. 이런 국방비 증가 사례는 미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입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아프간 전쟁 와중에도 향후 10년 동안 국방비를 1조 달러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럼 물가상승률까지 따져도 2021년 국방비는 6000억 달러 미만이었어야 하는데, 트럼프가 올라서서 6개월 만에 국방비가 7000억 달러 됐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것도 아닌데, 왜 엄청난 돈을 국방비로 쏟아 부을까요. 더구나 늘어난 국방예산의 많은 몫이 북한을 겨냥해 아태 지역 동맹국에 대한 무기 판매 증가, 군사협력,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 이런데 들어갑니다. 북한은 트럼프 연설을 “것 봐, 미국이 진짜 우릴 죽이려 하잖아. 그러니 핵이 있어야 해”하고 선전에 써먹을 생각이나 하겠지만 사실 지금 매우 심상치 않거든요.

김정은은 명심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자주 치면 비가 쏟아지는 법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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