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알기 힘든 은행 이야기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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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를 찾은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창구를 찾은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시간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 신용을 잃었고, 금융제재로 이제는 대외무역도 못할 처지에 처했다는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깥세상의 은행 이야기도 전해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에서 은행은 멀리 떨어진 딴 세상에 있는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여기 남쪽은 은행은 없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할 우리 삶의 일부와 같습니다. 남한에 은행이 몇 개인지 저도 몰라 자료를 찾아보니 국가 은행, 개인 회사 은행 포함해 거의 100개나 있다고 합니다.

북에선 조선중앙은행 하나만 알고 살았는데, 남쪽에 오니 무슨 은행이 그리 많은지 셀 수가 없습니다. 각 은행들이 전국에 갖고 있는 지점은 수만 개가 될지 수십만 개가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기 서울 거리 아무데서나 쭉 주변을 둘러보면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이 은행 간판입니다. 여기는 국민은행, 저기는 우리은행, 또 저쪽엔 신한은행 이런 식의 점포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렇게 은행이 많지만, 저는 어차피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그냥 큰 은행 한두 곳하고만 거래합니다. 은행이 하는 일은 저금, 대출, 외화 교환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하나 뜯어보면 돈 빌려주는 것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기업에 빌려주는 것, 개인에게 신용을 담보로 빌려주는 것, 아파트와 같은 부동산 담보로 빌려주는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월급을 받으면 화폐로 받지 않습니다. 은행에 있는 제 계좌로 회사가 돈을 입금하고 저는 그 은행에서 발급한 카드로 돈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제게 월급이란 숫자에 불과합니다. 돈을 만질 일이 별로 없으니 계좌에 얼마 찍혔다가 카드를 쓰면 매달 말에 또 쓴 만큼의 숫자가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제 계좌 숫자를 보고 “아, 내가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쓰고, 지금 얼마나 있구나”하고 아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현금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급할 때를 대비해서 좀 갖고 다니지만, 현금을 쓰는 것은 제가 쓰는 돈의 10분의 1도 안됩니다. 은행은 신용을 중시합니다. 제가 한국에 와서 아무런 금융 거래 정보도 없을 때는 단돈 500달러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갚을 능력이 있을지 모르니 함부로 돈을 줄 수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제는 15년 동안 거래하다보니 신용이 1등급이랍니다. 제가 직업과 소득이 확실하고 지난 15년 동안 빚을 지고 떼먹은 일도 없다보니 이제는 너는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은행이 판단한 거죠. 그래서 이젠 10만 달러도 빌려가라고 하네요. 자본주의라는 게 이런 곳입니다.

만약 제가 집을 사겠다 하면 그때는 또 수십 만 달러도 빌려줍니다. 가령 제가 100만 달러짜리 집을 산다 하면 50만 달러 정도 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걸 부동산 담보대출이라고 하는데 집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반값으로 떨어지긴 힘드니까, 만약에 제가 돈을 안 갚아도 집을 차압해 팔면 반값은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어찌됐던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야 하니까 저는 될수록 빌리지 않습니다. 제가 돈을 빌리면 연간 3.5% 정도 이자를 내야 합니다. 1만 달러를 빌리면 1년에 이자로 350달러를 은행에 주는 것이죠. 이자가 싸서 놀랍죠? 북한에선 월 이자 10% 준대도 빌리기 어렵습니다. 그건 그만큼 돈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북에선 자식한테도 돈을 잘 빌려주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북에서 “빌려준 돈 찾는 것은 나라 찾기 다음으로 힘들다”, “돈 빌린 사람은 노력영웅이고, 빌려준 돈 받은 사람은 공화국영웅”이란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물론 여기도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이자가 비싸서 1년 이자가 24%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돈을 안 갚으면 내 생활이 완전히 파산되기에 웬만하면 떼먹지 못합니다. 은행은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돈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사는데, 워낙 빌려준 돈이 많아서 많이 법니다. 한국에선 은행원으로 취직하기 진짜 어려운데, 한번 취직하면 월급 수준이 우리나라에서 상위권입니다. 결국 그 돈도 은행이 이리저리 돈을 굴려서 번 돈이죠.

그런데 요즘 한국에선 은행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개개인이 손전화로 금융 거래를 하다보니 굳이 은행에 찾아갈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부터도 은행에 잘 가지 않습니다. 송금하려면 손전화 켜고 지문을 한번 맞춰주고, 보낼 금액 입력하면 1분이면 송금이 끝납니다. 이런 금융혁명의 시대에 은행들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전국에 수십 만 개의 점포를 운영할 일도 없어진 것입니다. 점포가 없어지면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도 해고를 해야 합니다. 만약 불쌍해서 해고를 하지 않으면 직원 월급으로 나가는 돈이 많아서 경쟁력을 잃고 은행이 파산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은행들은 급격히 지점과 직원을 줄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추이가 계속되면 결국 점포와 직원이 극소수인 은행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북한의 기회를 생각해봤습니다. 북한엔 은행이란 것이 거의 없지만 나중에 여기처럼 잔뜩 지점을 만들었다 없애는 과정도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통일된 뒤 인터넷 은행만 만들면 북한 인민들은 은행이란 원래 손전화로 돈 주고 받는 것인줄로 알지 모릅니다. 마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일반 집전화를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손전화 시대를 맞다보니 전화기는 곧 손전화로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을 보면 꼭 한국이 걸어온 과정을 거쳐야만 선진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을 뛰어넘어도 얼마든지 선진 기술 시대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못산다고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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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 은행의 직원과 점포를 줄이는 중이다....ㅣ
이 대목,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어? 남한은 취업 지옥 있다는데 정말인가봐. 난 당 자금 운영하던 사람이라 회계 자신있는데...남한에 은행 만단 얘기 듣고 월남해서 은행 취업하려 했는데....안되겠다. 가봤자 소용없고 난 이방인이라고 배척받고 취업 지역이나 시달리다가 굶어죽을 팔자겟네...남한이 헬조선이라는 중앙당 선전이 사실이군'
이라고 생각하는 부작용이 없을지?

Nov 01, 2017 03:4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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