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의 팬 김정은에게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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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과 리설주 부부가 2015년 4월 13일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 남자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박수를 치며 크게 웃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과 리설주 부부가 2015년 4월 13일 김일성경기장에서 진행된 만경대상체육경기대회 남자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박수를 치며 크게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봄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태양절 기념행사에 초청돼 북에 갔던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라치 상원의원이 김정은을 만나 나눴던 대화를 영국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상원의원이 거짓말이야 하겠냐만은, 쉽게 믿어지진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하는 말이 김정은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축구광으로,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는 빼놓지 않고 본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매우 좋아한다며 맨유의 팬임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북한 청취자분들을 위해 조금 추가 설명을 드리면 팬이란 무엇을 극성스럽게 추종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좋아하는 대상은 배우가 될 수도 있고, 가수가 될 수도 있고, 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분이 한국 드라마를 엄청 좋아하면 한국 드라마팬이라고 하고,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하면 축구팬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좋아하는 대상이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하는군요. 맨체스터는 영국 도시 이름인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줄여서 맨유라고 합니다.

외국은 각 나라에 축구 리그가 있습니다.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로 평양 기관차팀, 압록강팀, 평북팀 이렇게 여러 축구팀이 서로 계속 경기를 해서 그해 우승자를 가려내죠. 한국도 서울팀, 수원팀, 부산팀 이런 식으로 14개의 1부 리그 프로팀이 있고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그 수준이 다른 대륙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몇 년 전보니 북한에서 독일 축구를 틀어줘서 여러분들도 봤을 겁니다. 원래 축구는 유럽이 잘해서 우수한 선수도 많은데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사다가 선수단을 구성합니다.

선수 몸값도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올해 프랑스의 어떤 팀은 스페인에서 뛰던 네이마르란 선수를 무려 2억5000만 달러에 사왔습니다. 이건 현재 세계 기록이지만 여러분이 알지 모를 메시나 호날두도 만약 팀을 옮기면 이 가격 이상을 받을 겁니다.

이건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의 이야기고 대개는 수백 만 달러 정도 왔다 갔다 합니다. 선수들의 연봉도 몇 백만 달러, 몇 천만 달러 이렇게 합니다. 북한 같으면 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죠.

이렇게 각 나라 리그는 서로 좋은 선수 끌어와 축구팀을 꾸리는데, 돈 많은 축구팀은 당연히 몸값 높은 세계적 수준의 선수를 사다 우수한 축구팀을 꾸립니다. 세계 상위 5위권 안에 드는 프로 축구팀은 브라질 독일 같은 축구 강국의 국가대표팀도 어렵잖게 이길 겁니다.

여러 나라의 리그 중에 축구의 종주국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경쟁이 가장 치열한 리그입니다. 맨유는 이 리그 20개 축구팀 중 우승 횟수가 가장 많은 명문 구단입니다. 거기 선수로 뽑혀서 뛴다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고선 어림도 없죠.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하니까 맨유의 가치도 높은데, 맨유라는 축구팀 하나를 사려면 37억 달러를 주어야 합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죠. 북한이 제일 무역이 활발하던 때의 무역 이윤 20년 치 모아도 살 수 없습니다.

맨유의 경기를 보면 확실히 축구 수준이 완전 다릅니다. 저는 한 12년째 프리미어리그를 즐겨 보는데 그걸 보면 한국 축구는 졸려서 안 보게 됩니다. 북한 축구를 보면 저것도 공이라고 차냐고 하겠죠.

프리미어리그에서 저는 바로 맨유팬입니다. 2005년에 박지성이란 뛰어난 한국 선수가 이 세계 최고의 팀에 뽑혀 가서 활약했는데,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사람들이 주말 밤이면 박지성을 응원했습니다. 영국 시간과 한국 시간은 서로 시차가 달라 맨유 경기를 보려면 12시 넘어 밤을 새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박지성 선수가 비록 3년 전에 은퇴했어도 지금도 맨유 경기를 거의 90% 이상 챙겨봅니다.

그런데 제가 응원하는 그 맨유를 김정은도 응원한다는 것 아닙니까. 저와 김정은이 똑같이 새벽까지 안자고 맨유의 박지성을 응원하고 있었다니 기분이 묘하군요. 제가 맨유가 골을 넣어 기뻐할 때 평양의 김정은도 환호를 지르며 좋아하겠죠.

여기선 유럽 축구 보는 남자들은 새벽에 자지 않고 뭐하나며 아내들한테 지청구를 좀 받습니다. 김정은은 어떨까요. 이설주는 함께 응원할까요? 아님 혼자 침실에서 자고 있을까요.

아무튼 이런 멋진 구경을 북한 인민도 함께 하게 해야지, 김정은만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참 나쁜 인간입니다. 축구에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좀 인민도 보게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김정은은 지금까지 농구광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농구를 좋아해서 1990년대 북한에서 번개팀이니 우뢰팀이니 하는 농구팀이 나온 게 다 김정은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아들이 농구를 좋아하니 농구 잘하는 선수들 모아다 팀 꾸려서 김정은에게 보게 해준 게 시초였죠.

그리고 김정은은 미국 농구도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이 몇 년 전에 데니스 로드먼이란 귀와 입에 이상한 고리를 낀 미국 농구선수를 평양에 불러다 엄청 대접해준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기엔 이상해도 로드먼은 한때 미국에서 농구선수로 날아다녔고, 김정은은 로드먼의 팬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국의 수준 높은 축구, 농구를 좋아하는 김정은이 북한팀의 실력을 보면 얼마나 눈이 감길까요. 저도 같은 축구팬으로써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김정은이 맨유팬이라면 확실히 한 가지는 알 것이라고 봅니다. 유럽 축구가 강한 것이 세계의 우수한 선수들이 능력에 따라 대접받으며 팀을 옮겨 다니기 때문이란 것을 말입니다. 북한도 발전하려면 똑같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 수준을 키워오고, 또 수준 높은 외국 사람들이 북한에서 활동할 수 있게 적극 문을 열어놔야 합니다. 그게 바로 같은 맨유팬으로 제가 김정은에게 권하고 싶은 말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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