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방문에서 느낀 역사의 교훈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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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명동이라고도 불리는 시먼딩의 밤 거리.
타이베이의 명동이라고도 불리는 시먼딩의 밤 거리.
Photo courtesy of Wikipedia/Diegotrazzi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난 한 주 동안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중국도 가보고, 일본도 가보고, 멀리 홍콩 싱가포르 타이 등에도 가봤지만 비행기 타고 2시간 남짓이면 가는 대만에는 못 가봐서 아쉬웠는데 마침내 꿈을 이뤘습니다.

이번 방문은 대만 정부의 초청이라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대만에서 중요한 여러 곳들을 방문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만은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본토에서 건너온 장개석이 집권해 오랫동안 유지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대만의 정식 국호도 중화민국입니다.

중국에 가면 어딜 가나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는데, 대만은 기차역이나 상점이 매우 조용했습니다. 혹시 떠드는 소리가 나서 보면 중국 관광객들이었습니다. 대신 말은 아주 중국 베이징 표준말과 비슷한 걸 써서 중국어를 좀 아는 저는 의사소통도 잘 됐고, 사람들도 매우 친절했습니다. 장개석은 중국에서 쫓겨난 이유가 부패에 있다고 생각해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사는 것을 극도록 경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만에 가면 술집도 거의 없고, 사람들도 술 마시는 것도 거의 드뭅니다.

중국은 대만을 통일하기 위해 국공내전이 끝났을 때 여세를 모아 부대를 총동원해 대만에 건너오려 했는데, 금문도라는 섬에서 국민당군을 이기지 못해 포기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국력이 커지면서 유엔에서 대만과 수교국을 몰아냈는데, 국력이 약한 대만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들이 국교 단절을 하고 중국과 수교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한국도 1992년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대만과 단교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만과 한국의 교류는 계속 이어져 대만과 한국은 서로 5위, 6위의 교역국이기도 합니다. 대만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국민소득이 2만 3000달러에 이릅니다. 한국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직접 현지에 가서 보니 물가가 싸서 살기는 좋았습니다. 중국은 지금 국민소득이 수천 불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 전의 중국 인민들은 장개석이 부패했다고 몰아내고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사회주의 체제는 알고 보니 실패작이었고, 개혁개방으로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중국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죠.

그런데 부패했다고 쫒아낸 장개석은 대만에 가서 그곳을 발전시켜 오늘날 대단히 잘사는 나라로 키워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북한과 비슷한 것이죠. 북한도 예전에 사회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십시오. 지구 최악의 가난한 독재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대만을 방문하면서 여기저기 역사적 건물도 많이 봤습니다. 대만의 최초 도시로 오랫동안 수도로 있었던 타이난이란 도시를 방문했는데, 거기엔 유독 정성공 유적지가 많았습니다.

정성공은 1600년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질 때 살았던 명나라의 마지막 충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명나라 황제들이 다 자살하거나 잡혀 죽는 와중에도 해안을 중심으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더는 버티지 못해 대만에 건너와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당시 대만은 네덜란드 식민지였는데, 이걸 빼앗은 것입니다. 그가 네덜란드군과 전쟁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현지 해설자는 정성공은 중국인 역사에서 최초로 서양인들을 물리치고 항복을 받은 인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정성공의 충신과 같은 행보와 서양인들을 물리친 기록 때문에 그는 아직도 중국에서 충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인데 내막을 알고 보면 좀 웃긴 데가 있습니다.

군대 2만 5000명을 이끌고 와서 수백 명이 지키는 네덜란드 요새 하나 함락 못해 9개월이나 전쟁을 했습니다. 그때도 벌써 서방의 대포는 중국인들이 넘기 어려웠던 산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빼앗은 요새 자리에 도시를 세운 것이 대만 최초의 도시자 수백 년 동안 수도였던 타이난인데, 정작 정성공은 네덜란드를 물리치곤 몇 달 만에 죽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곡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중국과 대만에선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 때문에 정성공을 많이 기리지만, 저는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난감합니다.

정성공이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명나라는 부패하고 타락하고 아무 힘도 없던 나라였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말기 우리나라처럼 말입니다. 이런 무능하고 부패한 나라는 지킬 가치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같은 걸출한 장군들 때문에 조선이 망하진 않았지만, 그때도 조선은 정말 진작에 망해도 아무 이상할 것이 없던 무능한 나라였습니다. 왕이란 인간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왕궁과 도성에 불을 지른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바로 조선시대 노비들이었습니다. 식민지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임진왜란 때 조선왕이 다 잡혀 죽었더라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무능한 왕조가 수백 년을 더 집권하면서 나라를 망쳐먹지 않았다면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돼서 36년이나 신음하고, 이어진 6.25전쟁으로 500만 명이 죽은 참극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역사엔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말입니다.

역사책을 보면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를 섬긴 한족들을 변절자라고 하지만, 그들을 변절자로 부르는 것도 저는 반대입니다. 무능한 왕과 부패한 나라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백성에 대한 변절이 아닐까요.

지금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무너졌어야 할 김정은 정권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간부들이 과연 충신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미 인민들을 변절한 인물들입니다.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는 빨리 무너져야 인민들이 잘 살 수 있고, 또 그것이 역사의 순리라는 것을 저는 대만에서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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