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들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7-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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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는 장면을 담은 CCTV 영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공격을 받는 장면을 담은 CCTV 영상.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2017년의 마지막 방송 시간이 됐습니다. 매주 여러분들께 국내외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해주기 시작한지도 벌써 10년이 가까워오는군요. 오래 하다보니 이젠 북에서 제 방송을 잘 들었다는 탈북자들도 가끔 만나게 됩니다. 라디오를 아무 때나 켜도 제 목소리나 억양을 알아들었다는 분들도 있던데, 제 억양이 많이 이상한가요. 아무튼 이건 제 특색이니 쉽게 고쳐지진 않겠지만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이 목소리와 억양이 김정은 독재정권엔 비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는 북한에서 충격적인 사건들이 적잖게 벌어졌는데, 이중에서 으뜸은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암살한 사건입니다. 정찰총국 요원들이 동남아 여성 두 명을 매수해 재미있는 영상을 찍겠다며 김정남의 얼굴에 치명적인 독극물을 문지르게 했습니다. 비행기표를 사려던 김정남은 난데없이 젊은 여자 두 명이 뒤에서 다가와 손으로 얼굴을 갑자기 비벼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병원으로 갔지만 한 시간도 안돼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암살될 줄은 조금도 몰랐던 것 같고 또 설마 동생이 자기를 죽일까 방심도 했던 것 같습니다.

왜 김정은은 외국을 돌면서 북에 들어가지도 않고, 말조차 조심스럽게 했던 김정남을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무리하게 암살했을까요. 저는 장성택을 죽인 것과 같은 이유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자기 자리를 넘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게 형이던 누구든 용납하지 않는 잔인함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남은 권력에선 멀어졌지만, 김정은에게 없는 매우 중요한 것, 다시 말하면 백두혈통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뭔 말이냐면 김일성이 생전에 인정한 손자가 김정남이 유일했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이 몰래 여자를 바꿔 살면서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낳은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김정남에겐 김일성과 찍은 사진이 엄청 많은데, 김정은에겐 김일성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있다면 벌써 자랑했겠죠. 심지어 김정은은 어렸을 때 김정일과 찍은 사진도 없습니다. 김정일은 본처 김영숙을 인민이 다 아는 마당에 몰래 정실부인도 아닌 여자와 살면서 애들을 낳았다는 것을 들키기 싫어서 김정은 형제를 어렸을 때부터 일찌감치 스위스에서 숨겨서 키운 것입니다. 김일성도 모르던 손자가 어떻게 백두혈통일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에 중국이 김정은을 제거하고 김정남을 올려 세우려 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요. 저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정남과 김일성이 찍은 사진을 잔뜩 공개하면서 김일성이 인정한 유일한 손자는 김정남이고 따라서 김정남이 백두혈통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선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사진도 찍지 못한 곁가지인데, 김정일이 병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을 때 곁가지 고용희 일당이 김정남을 내치고 권력을 찬탈했다고 선전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에겐 없는, 김일성과 사진을 잔뜩 내보이며 이렇게 선전하면 북에서 안 먹히겠습니까.

선전선동의 힘은 큽니다. 김일성과 김정남이 다정하게 찍은 수많은 사진들만 봐도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김정남을 꼭 혁명의 후계로 내세우라는 김일성의 소위 유훈을 적당히 조작해 내면 훨씬 더 잘 먹히겠죠. 따라서 김정은 입장에선 이복형 김정남이 존재하고, 중국이 보호해준다는 것은 정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을 겁니다. 김정남을 죽인 지금은 중국을 향해 “자 이제 나를 제거하면 북한은 권력을 물려받을 사람도 없어 혼란에 빠질 것이고, 중국이 그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냐”고 협박할 수 있는 겁니다.

김정은의 잔인함은 비단 이복형만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올해 황병서와 김원홍이가 사라졌습니다. 권력을 물려받은 뒤 자기를 충실히 보좌해, 장성택 제거 등 온갖 잡일을 다 맡아서 한 심복들을 이제 권력이 커졌다고 판단해 제거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고 토사구팽이라고 하죠.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는 필요 없고, 오히려 날 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거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김일성 시절부터 북한 독재자들이 잘 써왔던 방법입니다. 2년 전인가 제가 “다음 차례는 김원홍 너다, 그러니 그냥 앉아서 당할래 아님 저항하다 죽을 래”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손에 피를 많이 묻힌 김원홍이 토사구팽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었는데 그는 어쩌지 못하고 그냥 당했습니다. 저도 보이는 것을 김원홍이 생각 못했을 것 같진 않은데, 자기는 설마 안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요, 아님 반항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김원홍 후임 보위상은 독재 체제에선 나 역시 사냥개에 불과한 운명이란 것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사람 잡이를 실컷 시키다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죽여 여론의 제물로 바치겠죠.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돼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차를 몰고 진입해 남쪽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는 자유를 위해 목숨도 내거는 진정한 용기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분계선을 넘는 그를 향해 무려 50여 발의 총탄이 퍼부어졌지만 그는 여러 곳에 총상을 입고도 끝내 살아났습니다.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이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공개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렇게 이름 없는 병사도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줄 아는데, 북한 고위층들은 너무 늙어서 그런 겁니까. 왜 그리 배짱이 없는 것일까요. 새파란 김정은 앞에서 설설 기다가 “저런 자는 이 땅에 묻힐 자격도 없습니다”는 말이나 듣고 고사총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겁니까. 새해에는 북한에서 용기를 가진 위대한 인물이 나타났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져 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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