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마산시위가 북에 시사하는 교훈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3.14
april_revolution_305 4.19혁명 5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 18일 서울 강북구청 사거리에서 열린 '4.19민주혁명 국민문화제'에서 시민이 4.19혁명이 일어난1960년의 의상을 입고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3월 15일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촉발제가 됐던 마산시위의 시작일입니다. 북에선 이날을 마산인민항쟁이라고 배웠던 것 같습니다. 이 시위가 불타올라 결국 한달 뒤 4.19혁명으로 이어졌죠.

시위에 참가했던 마산상업고등학교 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것이 전 국민들을 분노케 해 결국 이승만 하야로 이어진 4.19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원래 이날은 기념일이 아니었는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0년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산은 참 대단한 지역입니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의 붕괴로 이어진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시작된 곳도 이곳입니다. 부마항쟁은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체제를 반대해 시위가 벌어졌기에 부마항쟁이라고 합니다.

마산 사람들의 기질이 아마 불의에 못 참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마산이지만 2010년 마산시가 진해시와 함께 창원시에 통합돼 지금은 그냥 창원시에 포함돼 있습니다.

4.19혁명을 북에서 배울 때 부패한 친미 매국노 이승만에 반대해 싸운 인민항쟁이라고 배웠습니다. 북에선 4.19혁명 기념일을 마치 자기들의 기념일처럼 기념보고대회도 열죠.

한국에 와서도 그 정도로 생각했는데, 살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이 적지 않습니다. 북에서 4.19혁명 기록영화를 방영할 때 시위대가 이승만 동상을 무너뜨리고 끌고 다니는 장면을 방영해 줍니다. 당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마산시위부터 4.19시위까지 한 달 동안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렇게 국민이 자기를 반대해 시위에 나섰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그놈들 몽땅 쏴버리고 진압해” 이렇게 명령을 내렸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186명이 아니라 그 백배도 넘는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하가 발포명령을 내려 학생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내가 맞았어야 하는데”하며 안타까워했고, 병원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부상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병원에서 “불의에 분노하지 않으면 젊은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진짜 그렇게 말했는지는 여기서도 논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한 뒤 장개석 당시 대만 총통에게 보낸 편지에 “불의를 참지 못하는 순수하고 열렬한 애국청년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장래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썼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80살이 썩 넘어서 권력에 대한 미련이 그리 크지 않아서 그런지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다는 말에 곧바로 하야했습니다.

대량학살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용단으로 중단된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지금 시리아를 보십시오. 아사드 정권이 권력에 집착하면서 끝내 버티니까 내전이 벌어져서 지금 12만 명이 넘게 사망했습니다. 권력을 놓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렇게 하야하니 시위에 나선 학생 시민들도 그에 화답해 “노후 편안하시라”는 현수막을 그가 사는 이화장 밖에 내걸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담 넘어 시민들에게 “놀러오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북에서 가르치는 비참한 독재자의 말로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걸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대인입니다.

물론 이승만 자유당 시절 한국은 정말 부패한 국가였습니다. 그렇지만 물러날 때를 아는 지도자가 있었음으로 해서 역사의 중요한 고비를 그 정도로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1960년 직전을 다시 돌아보니 그때 남쪽은 정말 부패했고, 북쪽은 사회주의운동의 초기라 전반적으로 남쪽과 비교할 바 없이 청렴하고 깨끗했습니다.

그러나 북쪽에선 공산주의 간판 뒤에서 김일성의 독재가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50년대 연안파와 소련파를 숙청한다면서 김일성의 유일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수만 명이나 숙청했습니다.

남쪽 인민들은 나라의 여러 권력을 틀어쥐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사회 지도층을 내쫓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전혀 반대였습니다. 김일성 독재를 반대한 것은 인민이 아니라 그래도 소련과 중국에서 혁명도 하고 교육도 받은 권력 기관의 인텔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의 검은 속심을 일찍이 파악하고, 유일 독재 시도를 목숨 걸고 막아 나섰지만 공산주의의 이상에 속아 넘어간 인민은 오히려 김일성을 지지하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수령님, 종파들이 쏠라닥거려도 우리는 수령님만 믿습니다”고 했던 태성리 할머니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멍청이입니다.

그 결과 지금은 어떻습니까. 믿었던 그 수령님이 왕조를 만들고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했고 지금은 손자까지 대대로 왕 노릇하고 무자비한 독재를 하고 있으며 북한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부패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인민은 어리석게도 김일성을 믿었지만, 김일성은 인민을 보기 좋게 속이고 배신한 것입니다. 그러게 권력자는 절대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마산항쟁을 포함한 남쪽의 항쟁이 북쪽에 주는 교훈은 또 있습니다. 결국 인민이 바뀌고 인민이 일어날 때야 만이 진정한 사회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소수의 엘리트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깨어나야 하고 그것을 쟁취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은 북녘 인민들이 환상에서 깨어났다고 믿습니다. 다만 지금은 공포 독재 때문에 일어나지 못할 뿐이죠. 그러나 민심이 점점 꿈틀대면 언젠가는 화산처럼 터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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