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와서 세운 인생의 목표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7.25
silk_island_305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으로 본 한반도의 서쪽 끝 비단섬은 압록강 지류의 오랜 퇴적으로 인해 섬 왼쪽 가장자리가 중국쪽 동강(東港)시에 거의 붙어버린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벌써 초복이 지나 중복이 가까워 옵니다. 여기 남쪽은 찬 공기를 내쏘는 에어컨이란 것이 많이 보급돼 있으니 집이나 직장에서나 그리 덥게 보내지 않습니다. 제가 북에 살 때는 선풍기 있는 집은 잘 사는 집이었지만, 지금은 아마 선풍기 있는 집이 많아졌을 것이라 봅니다. 지금도 저는 집에서 선풍기를 켜고 잠을 자지만, 진짜 더운 날에는 직장에서 에어컨에 습관된 몸이라 그런지 선풍기를 가지고도 버티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더운 시기에 한국은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계곡으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갑니다. 저는 이번 여름에 울릉도와 독도에 한번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강릉에 가서 배를 타고 두 시간 반 정도 달리면 울릉도가 나옵니다. 울릉도에서 다시 배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독도가 있는데 독도는 경비대만 사는 조그마한 바위섬이라 가서 잘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냥 배에서 내려 밟아보고 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긴 시간 멀미에 시달리면서도 독도를 가는 이유는 그냥 우리나라의 상징과 같은 곳이고 언제부터 한번 꼭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때 가고 싶었던 곳들이 몇 곳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곳에 제주도와 남쪽 끝인 마라도였는데 거긴 지금까지 몇 번 가봤습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청와대에 들어가 보고 싶었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곳은 마음먹으면 다 가볼 수 있는데 이런 곳들은 내가 가고 싶다고 막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다 청와대는 작년에 들어가 봤고, 박근혜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올 6월엔 드디어 판문점에도 가 봤습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청와대보단 더 의미가 있었고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북측 통일각 맞은편에 있는 자유의 집에서 통일부 간부들의 상황 브리핑을 듣고 밖으로 나오니 바로 앞에 인민군 민경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짜릿했던 경험은 제 두발로 북한 땅을 밟았을 때였습니다. 판문점 군사정전회담 회의실에 들어가면 남과 북의 구분 없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회의실 중간에 가서 창문으로 내다보면 바로 아래에 한 50㎝ 정도 폭의 시멘트 분단선이 있습니다. 남과 북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 분단선 위에 잠깐 섰다가 넘어가곤 했으니까 여러분들도 제가 뭘 말하고 있는지 다 아실 겁니다.

비록 회의실 내에 한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그 분단선을 지나서 북한 땅에 가서 사진도 찍고 했습니다. 회의실 북쪽 문을 열고 나가면 북한 땅인데 내가 이 문을 열고 고향에 가는 날이 언제일까. 그날은 과연 내 생전에 올 것이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가니 북한 쪽에서 어떤 민경이 나와 쌍안경을 가지고 자세히 관찰하더군요. 저희를 안내한 통일부 당국자의 얼굴은 아마 저쪽에서도 알겠지만, 그가 안내하는 사람이 북에서 온 탈북자인줄 전혀 알리는 없겠죠. 그 민경의 나이를 보면, 제가 그 군인의 나이 때쯤 평양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아마 북한 어디에서 인민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을 겁니다. 속으로 “너도 앞으로 내 나이 때쯤에는 한국에 와서 감개무량해서 돌아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빌어주었습니다. 판문점을 돌아보고 버스를 타고 나오면서 청와대도 가보고 판문점도 와보고 이젠 어딜 한번 가볼 까 생각하다가 독도를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살면서 마음속에 가보고 싶은 곳을 담아두고 있다가 가보는 것은 좋은 일 같습니다. 삶의 목표도 생기고, 가봤을 때 뭔가 목표를 하나 달성했다는 뿌듯함도 들지 않겠습니까.

한국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에 올라가 본 사람도 한 100명은 넘을 겁니다. 거긴 위험해서 목숨을 내걸고 올라가지만, 그런 것을 삶의 목표로 하는 사람이 세계에 엄청 많습니다. 죽기 전에 지구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보는 것. 생각만 해봐도 흥분됩니다.  그렇지만 저에겐 그것이 너무 과한 욕심 같아 보입니다. 서울의 북한산 하나 올라가면서 숨이 차서 헉헉 하는데 언제 에베레스트 오르겠습니까. 거기 가려면 한 5년 넘게 작정하고 열심히 체력을 키워야 하겠는데 저는 그럴 시간도 없고, 의지도 없으니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라톤 완주를 꿈꾸고 훈련하는 사람은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만, 저는 그것도 안 될 것 같습니다.

대신 저는 저만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리 땅의 동서남북 끝을 다 가보는 것이죠. 그런데 북쪽과 서쪽 끝은 북한에, 동쪽과 남쪽 끝은 남한에 있으니 이 네 끝을 다 가보는 것은 주물랑마봉 등반하기보다 몇 배로 더 어렵습니다. 저는 북쪽 끝인 온성군 풍계리는 가봤습니다. 이제 마라도를 찍고 독도까지 찍으면 북남동 세 끝은 가보는 것입니다. 아마 남북을 통틀어서 이렇게 세 곳에 가본 사람은 에베레스트 올라가 본 사람보다 훨씬 적을 겁니다. 있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 목표도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서쪽 끝입니다. 서쪽 끝이 남쪽에 있었으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의주 앞 비단섬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서쪽 끝은 통일되면, 혹은 그 이전에 김정은 체제가 무너지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생전엔 꼭 그날이 오겠죠.

아무튼 지금은 우선 독도를 가보는 것이 중요한데, 8월에 태풍이 많이 온답니다. 파도가 세면 배가 독도에 정박할 수 없습니다. 제가 독도에 발을 붙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결국 하늘에 달렸습니다. 물론 이번에 안 되면 나중에 다시 또 시도해보긴 하겠습니다만은 또 며칠 시간을 내야 하니, 좋기는 한번에 성공하는 것이 좋죠. 하늘에서 제게 특별히 축복을 내려주기를 기대합니다. 갔다 와서 소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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