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북한 군부 길들이기를 보며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4.08.15
oh_geumchul_305 지난 5월 오금철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거의 20년 전인 1995년 12월 25일자 노동신문에 “혁명선배들을 존대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라는 김정일의 담화문이 실렸죠. 제가 북한에 있을 때 그거 외우느라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김정일은 군부 원로들을 상당히 대접했습니다.

오진우는 죽기 1~2년 전부터 병상에 있었지만 사망할 때까지 인민무력부장을 수행하게 했고, 오진우가 사망하자 가장 늙은 최광을 무력부장에 올려 역시 죽을 때까지 하게 했죠. 조명록은 2003년 신장수술로 정상 업무 수행이 불가능했음에도 2011년 사망시까지 총정치국장을 유지하게 했고, 백학림 사회안전상이나 이하일 군사부장과 같은 원로급들도 자리에서 물러나도 해당 분야에서 고문으로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김정일의 아들인 김정은은 아버지와 너무 다른 행보를 보여 눈에 띕니다. 혁명선배를 존중하기는커녕 혁명선배를 모욕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요즘 김정은이 할아버지뻘 북한 간부들을 군기 잡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김정은은 나이가 어리니까 자격지심이 생겨서 60~70대 고령의 군부가 자신을 어린애처럼 바라보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아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군부에 하달한 지시가 “육체적 능력이 없으면 지휘관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나이 들었으면 군복 벗고 집에 가라”는 지시인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별을 기분에 따라 뜯었다 붙였다 하면서 장령들의 자존심을 바닥까지 구겨버렸습니다. 현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은 차수까지 올랐다 1년도 안돼 상장까지 두 계급이나 강등되기도 했고, 전임 부장인 장정남은 1년 사이 계급이 4번씩이나 오르내렸습니다.

군부 할아버지들이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성택도 하루아침에 목이 떨어지는 시국에 살 길은 단 하나, 자신이 육체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 뿐이 아닐까요. 김정은에게 잘 보이겠다고 할아버지들이 요즘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습니다. 생존의 몸부림은 육군에서 먼저 시작돼 3월 17일 김정은 앞에서 군단장 사격경기대회가 열렸습니다. 머리 흰 장령들이 잔디밭에 배를 깔고 사격을 하는 뒤에서 김정은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진이 북한 언론에 실렸었죠. 엎드려 사격만 한 것은 차라리 다행이지 며칠 뒤 사단장들은 군장을 메고 숨을 헉헉거리며 백두산까지 행군 경기를 벌였습니다.

육군이 이러니까 공군은 한술 더 떠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공군사령관을 지냈던 오금철에게 간청했습니다. 오금철이 누굽니까. 이영길 총참모장이나 현영철 무력부장보다 아찔한 선배인데다, 빨치산 때 김일성 경위중대장을 지냈다는 오백룡의 아들이니 확실한 ‘백두혈통’인 셈입니다. 오금철은 처음에 “내가 비행기 탈 나이가 아니다”며 거절했답니다. 그런데도 “그 연세에 비행기를 타면 공군은 누구나 육체적으로 준비됐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라는 집요한 청이 따랐답니다. 오금철은 재차 “몸이 아파서 비행기 조종이 힘들다”고 거절했는데 이번에도 “그럼에도 비행기를 타면 결사의 각오가 김정은을 감동시키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돌아와서 더는 어쩔 수 없이 전투기를 탔답니다. 그게 5월 10일 온천비행장에서 열린 ‘전투비행술경기대회’였습니다. 오금철은 각 비행전단장들이 경기를 마친 뒤 직접 미그기를 몰고 하늘에 올랐는데 이게 정말로 김정은을 감동시켰는지 오금철은 지난달 17일 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황병서처럼 보름 만에 상장에서 차수까지 두 계급 진급한 인물도 있는데 오금철은 상장에서 대장까지 19년이나 걸렸습니다. 오금철이 비행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는 이야기는 곧 장령들 속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오금철이 비행을 두 번씩이나 거절한 이유는 나이나 병 때문이 아니라 전투기 추락이 겁나서였다”는 것입니다.

실제 북한 비행기들은 언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전투기의 수명은 기껏 40년에 불과한데 북한 전투기의 90% 이상이 수명이 30년이 넘은 것들이고 직승기는 90% 이상이 20년이 지난 고물들입니다. 거기에 소련제가 질이 좋을 리도 만무하고, 요즘엔 러시아와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데 애를 먹고 있어 사실상 이제 5년 만 지나면 북한 공군엔 탈만한 비행기가 없어지는 셈입니다. 올해 들어서만 미그 19가 3대나 추락했고, 직승기도 2대나 추락했습니다. 훈련 거의 안했는데 이 정도입니다. 아마 오금철은 제일 좋은 미그기를 골라 탔겠으니 다행히 추락되진 않았습니다.

공군이 김정은 앞에서 재롱잔치를 벌이고 나니 이번엔 해군에 내가 육체적으로 늙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순서가 다가왔습니다. 7월 2일 배를 한껏 내밀고 서 있는 뚱뚱한 김정은 앞에서 팬티 바람의 해군 전대장 이상 지휘관들이 송도원에서 구호를 외치곤 10㎞ 바다 수영에 도전하는 웃기는 사진이 북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요즘 김정은은 군부대 가서는 활짝 웃습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군부 노인들이 하늘과 바다, 땅에서 설설 기고 있으니 카타르시스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군부 계급 널뛰기도 점차 줄어들고, 군부 수중에 외화벌이 회사들도 하나하나 늘고 있습니다. 노구를 던져 바닥을 박박 긴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재미를 본 김정은의 군기 잡기는 이제 노동당 간부들에게 옮겨갔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당 간부들이 백두산 답사행군을 벌이는데, 이 무더위와 장마 속에서 얼마나 고생하겠습니까. 아마 올라가면서 속으로 “120키로 넘는 김정은의 육체적 능력은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우리 늙은이들을 이 고생시키냐”고 불평하지 않을까요. 김정일은 혁명 선배들을 존대하라고 했는데, 김정은은 아버지 유언을 어기고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행동하니 북에서 간부하기도 정말 죽을 맛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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