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용을 회복하려면

주성하∙ 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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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시장에서 중국 인민폐로 물건이 거래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에서 요즘 경제개혁을 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경제개혁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은행의 정상화입니다. 개혁을 하려면 국가에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을 다루는 곳이 바로 은행이거든요.

경제라는 것은 돈이 잘 회전돼야 발전할 수 있는데 지금 인민들이 저금을 하지 않으니 국가에서 돈을 발행만 할 뿐 돌리지 못하죠. 그럼 할 수 없이 계속 새 돈만 찍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결국 예전에는 100원 하던 것이 좀 지나면 200원이 되는 인플레가 생기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계속 돈만 찍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그러면 돈은 점점 가치가 떨어져 휴지가 되는 겁니다. 인민들이 은행을 믿지 못하는 것은 100% 북한 정부가 자초한 일입니다.

1992년과 2009년의 화폐개혁이 반증입니다. 1992년에는 하루아침에 300원만 바꿔주고 나머지 저금도 어디 돌려주었습니까. 은행에 돈이 없다고 핑계만 대고 몇 년 동안 주지 않아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1992년까지만 해도 쌀 1키로에 7원 했는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5년경엔 쌀이 150원까지 치솟았으니 은행돈은 그냥 휴지가 됐죠. 세상에 은행에 내가 맡긴 돈을 찾지 못하면 그게 강도지 은행이라 할 수 있습니까.

2009년에도, 그땐 은행에는 물론 돈을 맡겨놓진 않았지만, 갑자기 기존 화폐를 무효로 하고 새 돈을 쓴다고 하니 기껏 모은 돈을 다 휴지로 만들었죠. 올해만 봐도 6월에 쌀 한 키로에 3,8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6,500원이나 합니다. 그러니 은행을 믿고 저금시키는 것은 내 돈을 버리는 길일뿐입니다. 결국 국가를 믿지 못한 사람들은 달러나 인민폐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화폐개혁 이후 사람들이 저금을 하지 않으니 인민반장이 집집마다 돌면서 강제로 저금하라고 강요하기까지 했죠. 그래서 정 못 견딘 사람들이 돈 버린 셈치고 조금 저금시키는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돈이 저금되면 제일 살 판 나는 것이 은행장입니다. 그 돈을 뒤로 장사꾼들에게 빌려주고 한 달에 10%씩 이자를 받으면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다 아니까 저금시키라면 “내가 어느 놈 좋은 노릇하라고 저금시키냐” 이러면서 반발하는 겁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믿음을 도대체 어떻게 회복할 겁니까. 정말 제가 봐도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은행에 저금시킨 돈을 요구할 때마다 무조건 전액 이자 두둑하게 붙여서 내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최소한 5년은 신용을 보여야 사람들이 은행을 믿겠죠. 그래도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니 사람들이 물자로 깔고 있으려 하지 은행에 저금시키려 할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돈의 흐름은 정치적으로 좌우되면 안 됩니다.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은행 정책이 여기가고 저기가고 하면 믿음을 줄 수 없습니다. 세상에 돈만큼 민감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북한 지도부들은 아무리 경제개념이 없어도 최소한 신용 개념 하나만큼은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북한이란 나라 자체가 신용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회인데 은행이라고 신용이 있겠습니까. 북한은 예전에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많은 돈을 꿔왔습니다. 소련에서만 110억 딸라를 빌려왔는데 당연히 지금까지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저번 시간에 제가 설명해 드린 신용불량자인 겁니다.

중국에선 얼마 빌려왔는지 알 수조차 없고, 한국에서도 많은 돈을 빌려 갔습니다. 지난 기간 대북지원 식량이 들어간 것 있잖습니까. 그거 더러는 무상지원이지만, 대다수가 10년 만기의 차관 형식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한국이 북에 식량과 물자로 준 차관 총 액수가 7억 2,000만 딸라나 됩니다. 올해 6월에 2000년에 쌀 20만 톤을 빌려간 차관 첫 만기일이 돌아와서 600만 딸라를 갚아야 하지만 아무 말도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쌀 줄 때 떼이는 셈 치고 줬을 겁니다. 설마 갚기야 하겠냐 하고 생각했겠지만 그래도 국가 간 거래엔 형식이 중요하니 차관 형식으로 줬겠죠.

그렇더라도 갚을 때가 되면 역시 국가 간 거래니까 형식적이라도 미안하다 사정이 이리됐다 이런 의사라도 표명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고맙단 소리 대신 오히려 한국 정부 타도하자 이러고 있으니 여기 사람들 화 안 나겠습니까. 뭐주고 뺨맞은 격이니 다시 주고 싶지 않은 거죠.

북한도 놀랍게 약속 지킨 때가 있었습니다. 2007년에 빌려간 경공업 자재 차관 8,000만 딸러에 대해 2008년에 약속대로 3%에 해당하는 240만 달러를 아연괴 1,005톤으로 갚기도 했습니다. 주면 갚으려 하는 거, 이런 게 바로 신용이죠.

여기 은행도 통장에 10만 딸라 쌓아놓은 사람보다 1만 딸라를 빌려서 약속한 시간에 갚은 사람의 신용등급을 더 높이 쳐줍니다. 이 사람은 빌려주고 받는 것에 검증이 된 사람인거죠. 북한도 신용을 하나를 보이면 여기는 열을 주고 싶을 겁니다. 1,000만 딸라를 갚으면 1억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북한 자체가 신용을 모르니 북한 무역쟁이들도 중국 대방 돈 떼먹는 거 너무 우습게 압니다. 탈북자들도 신용이란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 여기 와서 시간 약속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곧 자기 신용과 나아가 몸값을 높이는 길이란 걸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살아야 그제야 깨닫더군요.

이게 어디 탈북자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요. 착한 사람들을 신용도 모르게 만든 제도의 잘못입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신용 지키는 나라로, 나아가 학교에서 신용을 잘 지키도록 교육도 하는 그런 나라로 빨리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북한이 사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