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손자 생각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7.02.03
yalu_crossing_nk_ppl-620.jpg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인 압록강변에서 북한군으로 보이는 청년들과 아이를 업은 어머니가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며칠 전에 저는 TV조선 채널에서 5주년 특별기획 ‘천국의 국경을 넘다’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해 이곳 한국으로 오는 과정을 가족들과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의 화면과 해설원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10살 손녀가 한마디 합니다. “할머니, 우리 엄마도 저 강을 캄캄한 밤에 넘어 왔어?” 갑자기 가족들의 시선이 손녀에게 쏠렸습니다. 손녀는 조금 당황했는지 작은 고사리 손으로 제 입을 막았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작은딸의 손자 녀석들을 위해 사위역시 조금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갑자기 싸늘해 진 분위기가 되자 제 눈에서는 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합니다. 음력 설 북적이는 분위기로 잊었던 고향생각이 났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도 벌써 20여 년이 되었네요. 벌써 강산이 2번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향에서는 이번 설을 어떻게 보냈을까? 설 아침 맛있는 음식 차려 놓은 둥근 상에 모여 앉아 고향을 떠난 우리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그들의 마음속에서 까마득히 잊히고 있지나 않을까?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또 우리 손자들이 만나볼 그날이 있을까?’ 생각을 해보니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서도 고향이 그리워지는 고향생각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어린 딸애를 먼저 입양시켜 탈북 시키는 화면이 나옵니다. 엄마의 품을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고 또 우는 어린 자녀와 헤어지면서 가슴을 쥐어뜯는 젊은 엄마의 모습과, 먹고 살기가 어려워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말도 모르는 중국에서 자녀를 낳았고 이곳 한국으로 오기 위해 그 자녀마저 중국에 남겨 둬야 했고 결국에는 북한과 중국에 두 나라에 자녀를 두고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 탈북 여성들, 흘러간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남의 일이 아니거든요.

한국으로 오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중국 청도를 출발해 난닝을 거쳐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때로는 도보로 때로는 길고 좁은 쪽배를 타고 때로는 진펄을 걷기도 하면서 무진 고생을 했습니다. 진펄에 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가시밭길도 걷고 땀에 젖어 다른 나라 국경선 철조망도 넘으며 이곳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면 무조건 데리러 오겠다고 편지 한 장과 함께 3살짜리 손자 녀석을 믿을 만한 분에게 맡겨 두고 떠나 왔건만 벌써 그 손자가 자라 16살이 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 사진 한 장을 손전화기로 받았습니다. 아마 그때 흘린 눈물이 한강물 만큼이나 흘린 듯합니다만, 항상 저는 두고 온 손자를 생각하면 어렵고 힘들어도 함께 이곳으로 오지 못한 자책감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슬그머니 저는 안방으로 들어가 손자의 사진을 꺼내 보았습니다.

딸과 함께 손자 녀석을 처음 만난 곳은 중국 청도에서였습니다. 중국 흑룡강성 송화강 잡지에 광고를 내어 6년 만에 딸과의 상봉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데 난데없이 달려온 3살 손자 녀석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제 뺨을 쳤습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흘러내리던 눈물마저 쑥 들어갔습니다. 제 엄마가 그 때에야 작은 꼬맹이에게 외할머니라고 소개 했습니다.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작은 꼬맹이 손자 녀석을 제 어미품에서 떼어놓고 올 때 가슴이 메어지고 너무도 아팠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을 위해 두고 왔건만 10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데려 오지 못할 줄 알았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두려웠어도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라는 각오로 내 품에 안고 출발했으면 이런 때늦은 후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때론 나 홀로 비행가 타고 가서 훔쳐 오려고도 생각했었고 때론 브로커를 시켜 데려 오려고도 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딸의 가슴속에 큰 상처를 박아 주었다는 아픔이 큽니다. 남달리 손자 녀석들에게 애착과 집착이 강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 설에도 손자 녀석들에게 좋은 선물과 용돈을 듬뿍 안겨 주었답니다. 올 설날에도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속에서 두고 온 손자 녀석을 새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탈북자들의 이 같은 아픔과 비극이 언제면 끝이 보일지, 먼 훗날 우리 손자 녀석들이 조상들과 제 부모님들의 아픔과 비극을 이해하게 될지 때론 두렵기도 합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 누구보다도 맨 먼저 평양으로 달려가 내가 살던 집을 꼭 구입해 우리 손자들에게 너희 부모들이 어린 시절 꿈꾸며 살던 집이라고 알려주고 싶네요.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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