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특별한 설 명절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4.02.06
museum_ddock_making-305.jpg 설 연휴를 맞아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을 찾은 가족단위 시민들이 떡메치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음력설이었습니다. 올해 음력 설 명절은 아마 저에게 가장 뜻깊은 명절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습니다. 제가 이곳 한국에 와서 11번째로 맞는 설 명절이기도 했고 또 자식들 곁으로 이사를 해 처음으로 보내는 명절이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저 역시 다른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명절에 우리 가족이 먹을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한 부식물을 구입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대형 수산시장인 노량진 시장과 대형 상점인 마트를 오고 가면서 부지런히 장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꼭 기대하는 것이 있었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식들이 쥐어 주는 두툼한 용돈이랍니다.

옛말 중에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 먹을수록 아이가 된다고 합니다만 해마다 명절이 되면 저도 은근히 철없는 아이로 되돌아가는 듯도 합니다. ‘올해 용돈을 받으면 어디에 쓸까,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값있게 써야 될 텐데’ 하고 말입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지 ‘우리 엄마는 선물보다 돈을 더 좋아해’라는 말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다른 가정들에서는 설 명절 아침에 온 식구들이 모이지만 우리 가정에는 설 명절 저녁 식사 시간이 보다 즐겁답니다. 시집간 딸들 역시 한 가정의 며느리들이다보니 아침에는 될수록 시댁에서 보내거든요. 하기에 때로는 혼자 저녁을 기다리다 보면 외로움으로 지칠 때도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올 명절에는 혼자가 아니라 며느리와 함께 설 명절 준비를 하기에 저에게는 더더욱 행복하기도 하고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오후시간이 되자 작은딸 내외가 손자들과 함께 도착했고 이어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큰딸 내외도 왔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집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더욱 흥성거리고 웃음이 핀답니다.

우리 가정 설 명절 밥상에는 해마다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게 중에서도 커다란 게인 킹크랩이랍니다. 식탁에 올려놓은 킹크랩을 보자 사위는 정말 크다고 말하면서 사진기를 들었습니다. 큰 밥상에 빙 둘러앉은 식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수저를 들려고 하는 순간 큰딸은 미리 준비한 커다란 선물을 꺼내 놓았습니다. 궁금한 생각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평상시에 마련하고 싶었던 황금색 이불이었습니다. 가격 역시 만만치 않은 포근한 이불이었습니다.

손녀 딸애는 황금이불을 덮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고 한마디 덧붙여 우리 가족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작은 딸 역시 맏이는 맏이라고 말하면서 두툼한 봉투를 내놓았고 아들 며느리도 누나들에게 지지 않고 두툼한 봉투를 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저 역시 손자 녀석들이 예쁜 한복차림으로 올리는 세배를 받고는 전날 은행에서 받아온 만화 속 주인공 뽀로로가 그려있는 봉투에 세뱃돈을 담아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하나씩 쥐어 주었습니다. 이제 겨우 16개월이 된 손녀는 아직 돈에 대한 가치를 모르다보니 집어던지고 크고 긴 킹크랩 다리를 하나 손에 들어 우리 식구는 집안이 떠나 갈듯이 크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식구들은 또 북한 순대를 먹으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잊히지 않는 북한에서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순대가 생각난다고 해 장마당에서 순대 1kg을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수수쌀을 우려내 색깔을 낸 순대라 순대 맛은 하나도 없고 그저 뻑뻑한 맛이 날뿐이었습니다. 장사꾼에게 찾아가서 환불을 하려고보니 벌써 장사꾼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당시 모든 것이 부족한 북한 장마당에서는 모든 물건 값이 치솟아오를 시기라 순대 값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날 남편의 꾸지람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하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 아이들은 순대를 보면 마음 아팠던 그날이 떠오른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는 오히려 추억이 되어 웃음도 납니다.

추억을 떠올리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카드놀이를 했습니다. 내기 카드놀이로 돈을 많이 딴 사람이 부침개와 비슷한 서양식 음식인 피자를 사기로 했습니다. 비록 1,000원이 왔다 갔다 하는 내기였지만 은근슬쩍 팽팽한 신경전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작은딸과 아들, 며느리, 그리고 저 넷이서 시작을 했습니다. 사위들은 아내들을 응원하기도 했고 아내들의 신경전을 보면서 더욱 재미있어 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는 팽팽해졌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식구들과 함께하는 카드놀이라 더더욱 흥미 있고 즐거웠습니다. 만원, 미화로 10달러 정도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제가 모두 잃었습니다. 당황스러워하는 제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위는 제가 안쓰러웠던지 저를 도와준다면서 만원 한 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들이 돈을 많이 따 피자 두 판을 전화로 주문했습니다. 설 명절 늦은 밤, 야식으로 가족들과 함께 먹는 피자 맛 역시 별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내 가족들과 함께 보낸 올 음력설이 먼 훗날 또 얼마나 훈훈한 추억이 될까 하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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