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이 어제 같은데 벌써 따스한 봄 햇살이 저의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는 봄이 왔네요. 봄은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땅속에 숨어 있던 새싹들이 파릇파릇 돋아나 봄 햇살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의 행복은 하늘 높이 훨훨 날아가듯 끝이 없습니다.
아침저녁 꽃샘추위로 조금은 쌀쌀하지만 봄을 먼저 알리는 여성들의 화사한 옷차림은 거리를 화려하게 꾸미고 그동안 추위에 움츠렸던 모습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동네의 놀이공원에는 포대기 속에서 나온 꼬마 아기들이 뚱기적 뚱기적 걸음마를 걷고 있기도 하고 아기엄마들은 수다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양지쪽에 있는 벚꽃 나무들과 살구, 앵두, 장미 꽃나무들 중에는 벌써 겨울옷을 벗어 던진 듯 물오르기 시작한 나무들도 있습니다. 봄을 맞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시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특히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고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친정집으로 찾아오는 딸과 아들 손자에게 보양 음식을 해주기 위해 시장에 갔습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에만 봄이 온 줄로 착각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벌써 텁텁한 입안을 향긋하게 해주는 봄나물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봄에 많이 먹으면 눈을 밝게 해준다는 달콤한 냉이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자연산 달래 외에도 참취나물, 쑥 그리고 아삭아삭한 봄동. 보기만 해도 봄의 기운을 한층 느끼게 했습니다. 그야말로 봄 냄새가 제법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사계절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북한 같으면 이런 봄나물은 아직 조금 더 있어야 나올 듯도 하건만 봄이 되기 전에 벌써 봄나물이 시장을 꽉 메우니 저절로 입맛이 당깁니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보던 저는 달래 간장에 콩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둘째를 임신한 작은 딸이 입덧으로 집에 오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콩과 달래 나물을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구입해 가지고 부지런히 집으로 온 저는 콩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놓았습니다.
그리고 달래 간장을 만들고 더러는 달래 오이 무침을 했습니다. 달래와 무로 나박김치를 담가도 좋습니다. 약 한 시간이 지나 저는 퉁퉁 불어난 콩을 믹서에 갈았습니다. 그리고는 끓는 물에 삶아 내어 우려낸 묵은지를 잘게 썰어 끓는 비지 가마에 조금씩 넣었습니다. 그야말로 먹음직스러운 북한식 콩비지였습니다.
혼자 먹기엔 아쉬움도 있고 음식은 나눠 먹어야 더 맛이 있기에 저는 비지를 친구 순이네 집에도 한 그릇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북한식 콩비지를 보는 순간 이게 몇 년 만에 먹게 되는 음식이냐며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한참 밥을 먹던 아들은 달래 간장의 향을 맡아보더니 한마디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달래 먹기도 참 어려웠지...언제인가 엄마는 티눈에 달래가 좋다는 말을 듣고 누나의 발가락에 난 티눈을 없애 주기 위해 시장에서 겨우 달래 한줌을 구입했었는데 달래 무침 한번 해 주지 않고 누나 발에만 짓찧어 붙여 줬었는데...' 뜬금없이 한마디 하는 말이었지만 저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지금은 콩비지를 별미로 가끔 먹지만 너무도 비지가 먹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들은 갑자기 부모 잃고 집 잃고 꽃제비가 되어 평양시 이곳저곳을 떠돌이하며 산다는 이유로 관리소로 가게 됐었는데 거기에서 배고픔을 참지 못해 날콩을 수없이 먹었던 것입니다. 그때엔 그 콩알도 없어서 못 먹었는데 비리지 않고 오히려 날콩이 고소했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또 한 번 제 마음이 아프고 쓰렸습니다.
저는 잠시 그늘이 진 아들에게 콩은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동맥 경화증이나 노화 방지에도 좋고 변비나 비만 해결에도 좋고 당질이 적은 식품으로 당뇨에도 매우 좋은 음식이기에 자주 먹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콩비지는 하기도 쉽고 가정에서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식량 공급이 갑자기 끊겼던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 보충으로 많이 해먹었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콩 한 줌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맷돌에 갈아 김치를 많이 썰어 넣었기에 말이 콩비지였지 김치찌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배를 채워주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주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북한에서 고기 생각이 날 때마다 콩비지를 만들어 먹어 궁기를 없애곤 하던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평양시에서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콩을 쌀 대신 공급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이면 콩을 물에 불려 놓았다가 남들 다 자는 새벽에 일어나 맷돌을 갈아 콩비지를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새벽이면 온 동네 집집마다 콩비지 끓이는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는 콩비지였지만 별미로 맛있게 먹어주는 내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뿌듯합니다. 여기에서는 별미로, 건강식품으로 자주 먹을 수 있는 콩비지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먹고 싶어도 자주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맵짠 칼바람이 불어왔던 춥고 추운 긴 겨울이 지나고 북한 주민들에게도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꽁꽁 얼었던 몸을 녹일 수 있는 봄이 찾아 왔습니다. 훈훈한 콩비지에 달래 간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도 항상 내 고향 주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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