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한국 드라마를 보고 떠올린 군대의 추억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2-04-04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baekdoo_lady_army-305.jpg
지난 2월 백두산 밀영의 김정일 고향집 앞에서 열린 결의대회에 참석한 여군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요즘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MBC 수목 드라마 “더킹 투 하츠”라는 드라마에서 북한 여성 고급 장교로 등장하는 하지원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나간 추억을 새삼스럽게 되새겨 봅니다. 만약 북한 여성 장교가 하지원처럼 짧은 치마를 입을 수도 없지만 만약 입었다면 수정주의 날라리 풍이라며 강한 사상투쟁 대상으로 생활 총화에서 시달릴 뿐만 아니라 엄중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50대가 훨씬 넘은 흔히 불리는 아줌마가 됐습니다만 18살 한창 꽃망울과 같은 어린 나이일 때 제가 군에 자원입대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평양시내 여성 군인들이 보위색 모직 군복상의에 까만 주름치마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까만 가죽 장화를 신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표를 달고 항일모를 쓰고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한창 천진난만한 나이였지만 제가 보기에도 너무도 멋있고 자랑스러워 보였습니다.

또 어린 나이에 항상 군복을 입은 아버지의 멋있는 모습만을 보아 왔습니다. 한창 멋 부리고 뭔가를 당당하게 해 보고 싶은 10대 사춘기 소녀였기에 오늘 더킹의 주인공 하지원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6·25전쟁의 그날부터 반생을 군인으로 살았던 아버지를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군인의 가족생활로 고생을 하신 어머님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이 귀한 저의 가정에서 제가 아들 대신 당원이 되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라 생각을 하고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

평양 제 1려관에서 군복을 입은 저는 9명의 친구들과 함께 발룡산 대호를 가진 한 장교님을 따라 황해남도 재령군으로 갔습니다. 비록 빨간 연장을 달았지만 소위 특수 부대라는 말에 은근슬쩍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습니다. 열차 안에서까지도 기분이 붕 떠 있었는데 황해남도 금산역에 내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무연한 벌판의 논두렁 같은 곳에 소달구지만이 다닐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을 걸으면서 볏짚으로 지붕을 한 초가집만 드문드문 있는 것을 보면서 저런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부대에 도착한 날부터 저에게는 지옥이었고 군에 입대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지방에서 채 도착하지 못한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평양에서 함께 간 친구들과 저는 한창 모내기철이라 모내기 전투에 동원됐습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물이 몸에 맞지 않아 온 몸에 피부병으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개월 신입병사 교육을 마치고는 군인 선서와 함께 서약서를 쓰고 부대를 배치 받아 간 곳이 바로 공군 사령부 로켓 부대였는데 집도 없고 진지도 없는 그야말로 말뚝 부대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러시아에서 들여온 북한의 로켓 부대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이미 그때 북한에 산이 많기 때문에 로켓을 북한 실상에 맞게 개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곧장 대대적으로 로켓포를 만들어 1970년에 갑자기 부대를 확장시켰습니다.

한 개 여단에 화력대대 13개와 기술대대 3개 대대가 속한 세 개 여단을 조직했고 한 여단 지휘부는 평양시 중화군 채송리에 여단 지휘부를 두고 평양을 중심으로 황해북도와 황해남도, 강원도에 주로 배치를 했으며 다른 한 개 여단은 지휘부를 함흥시 흥상에 두고 평양을 중심으로 함북도와 함남도, 량강도에 주로 배치를 했고 또 다른 여단은 지휘부를 평북도 숙천군에 두고 평양을 중심으로 평북도와 평남도 그리고 자강도에 주로 배치를 했습니다.

로켓포는 기본 지상대 공중 사격 대상이라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고공 정찰기나 특수 비행기를 사격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에 저공으로 날아오는 비행기 사격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조건이 있기에 대대마다 고사총과 고사포를 배합한 여성 중대를 조직해 두었습니다. 새 부대에 도착한 첫날 밤 천막 속에 들어가 잠자리에 누웠는데 발은 바깥으로 나가고 위로는 별이 보였습니다. 저는 매일 밤 '별 하나 별 둘' 하면서 눈물과 함께 수없는 별을 헤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아침 기상 소리와 함께 남자들과 함께 목고도 메고 들고도 들고 공사판에서 뛰어 다니면서 고사포 진지와 로켓 진지도 건설했고 군인들이 살 수 있는 집도 짓고 식당도 지었으며 군인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살림집도 지었습니다. 추위에 갈라터진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고향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모르게 소나무 숲속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죽여 수없이 울기도 했습니다.

전투 근무로 밤에는 옷을 꽁꽁 입은 채로 신발까지 신고 쪽잠을 자기도 했고 나무조차 볼 수 없는 캄캄하고 조용한 밤에 짐승 울음소리와 진지 밑에 있는 례성강 얼음이 터지는 듯한 쩡쩡 소리를 들으면 그야 말로 머리카락이 곤두서곤 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례성강의 얼음을 망치로 까고 차디찬 찬물에 머리를 감고 빨래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여성이란 말조차도 잊었던 것 같았고 그때 냉한 훈련을 잘 한 탓에 지금 추위를 타지 않은 듯도 합니다. 때문에 중대 군인들 속에는 심한 냉으로 규칙적인 생리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북한 군복무 기간은 이곳 대한민국 군 장병들보다도 몇 배나 길지만 생활환경은 우리 대한민국 장병들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식생활은 물론 모든 생활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군에 입대하면 영양실조나 허약해져 고생하는 군인들이 대다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정말 드라마 속 주인공 하지원의 모습을 보며 흘러간 여군 생활, 그때의 젊음을 잊지 못하며 북한 군인들에게 저는 인생 선배로 아니 군복무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 대한민국은 북한에서 선전하는 그런 사회가 아닙니다. 북한이 지옥 같은 세상이라면 여기 대한민국은 여러분들이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천국 같은 세상입니다.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적이 누구라는 것을 가려보고 여러분들의 행복한 새 삶과 자유, 인권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하고 싶은 말 (0)
  • 인쇄
  • 공유
  •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