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대처하는 남한과 북한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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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로 인해 남한의 주민들은 지금 슬픔에 잠겨있으며 아직도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 가족, 내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분향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난 5일 어린이날에 손자 녀석들과 함께 평택 전철 역 앞에 마련된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손자들이 철없는 개구쟁이인줄로만 알았는데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에 조금 놀랐습니다.

분향소를 나와 차에 오르면서 8살짜리 손녀는 선장 아저씨가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나왔다면서 텔레비전에서 본 그대로 얘기합니다. 5살짜리 손자 녀석 역시 누나, 형아들이 선장 아저씨 때문에 희생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하는 어린 손자 녀석들이 주고받는 얘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어린아이들 마음에 상처가 생겼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도 캄캄하고 차디찬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실종자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봅니다.

그들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이며 희망이었습니다. 꽃망울도 활짝 피워보지 못한 채 사라진 아이들은 실종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디찬 물속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꽃망울들이 물에 잠기는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가 물속 깊이 가라앉는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 두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으며 물이 흘러 들어오는 차디찬 물속에서도 7살짜리 오빠는 한 살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입혀주었기에 동생은 구조됐지만 오빠는 아직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물속에 잠기면서도 아빠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짠하고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잠겨있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전국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 국민들의 수많은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구쟁이인줄로만 알았던 철없는 손자 녀석들의 어른스러운 얘기를 들으며 잠시 잠깐 고향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고향을 임진강 하나 사이로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북한이 고향인 우리 탈북자들 속에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식을 땅에 묻어두고 왔으며 또 이곳 대한민국의 자유를 찾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오는 과정 중에 소중한 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기에 가족을 잃은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웃고 싶어도 자유스럽고 편하게 웃을 수 없고 울고 싶어도 마음껏 땅을 치며 울 수 없는 북한 땅, 언론의 자유가 없고 인권이란 두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 북한 땅에서는 지금도 죄 없는 주민들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맞아죽고 공개 총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고픔에 반란을 일으켰다고 황해 제철소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탱크로 제압해 죽게 했어도 누구 하나 말을 못하고 가슴만 쥐어뜯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비밀을 지키려고 당시 목격자들까지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공개총살을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승객들을 태운 버스가 사고로 인해 대동강 물에 빠지자 그들을 구원하려고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았으며 주변의 사람들을 얼씬 못하게 진을 쳤다고 합니다. 푸른 강물 속에 빠진 사람들은 살겠다고 옥류교 다리 기둥을 잡고 허우적거리다가는 다시 물속으로 미끄러져 희생됐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체육대학 수영과 선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북한 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접근 금지시켰으며 다음날에야 싸늘하게 식은 시체만을 건졌다고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없고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독재국가 북한에서는 사람의 생명을 짐승만큼도 여기지 않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오늘도 북한 당국은 슬픔에 잠겨있는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 핵실험과 로켓 발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텔레비전 앞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실종자들을 찾는 대한민국 해경 잠수부원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통감하면서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