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박람회와 어버이날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5.05.14
ilsan_flower_fare-305.jpg 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 15만㎡에서 열린 고양국제꽃박람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여느 때보다 수많은 가족이 모여 꽃박람회와 꽃축제 등을 찾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서울 인근 일산호수 공원에서도 아주 큰 꽃 축제가 있어 가족 나들이가 한창이랍니다. 지난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죠. 자식들로부터 용돈도 두툼하게 받았습니다만 이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일산 호수공원 꽃 박람회장을 찾았습니다. 조금 늦은 아침을 먹은 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일산 호수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아이들과 또 어떤 이들은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을 모시고 또 어떤 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오신 분들도 있고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들과 친구들과 함께 온 이들로 도로가 꽉 막힐 정도였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들 속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즐겁고 제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습니다. 막 호수 공원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7살짜리 손자 녀석은 할미의 손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달렸습니다. 물결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질까 두려워 부지런히 따라갔습니다. 그때 저의 눈에는 아주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또래 아이들이 눈에 들어 왔던 것입니다. 손자 녀석은 오토바이를 먼저 타겠다고 해서 저는 순서를 떠나서 그렇게 했습니다. 오빠 덕분에 오토바이를 탄다고 4살짜리 손녀도 좋아라 손뼉을 쳤고 9살짜리 외사촌 누나도 좋아서 난리법석이었습니다. 30분을 탔습니다.

일산 호수 공원에서 진행하는 국제 꽃 박람회는 사실 1997년에 처음으로 개최되어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2015년 국제 꽃 박람회에도 역시 관련기관과 기업체가 많이 참가해 다양한 희귀식물과 수많은 이름 모를 갖가지 꽃들이 제가끔 화려하고 아름다운 맵시를 뽐내며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웅장하고 화려함에 저는 할 말을 잊고 황홀경에 젖어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할 것 없이 우리 가족들의 입에서는 연속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개구쟁이 손자, 손녀 녀석들은 너무 좋아라 어쩔 줄을 몰라 하기도 합니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에서 내뿜는 향기가 코를 찌를듯합니다. 4살짜리 손녀 애가 쪼그리고 앉아 꽃 가까이에 코를 갖다 댑니다. 마치 어른스러운 모습에 우리는 웃었습니다. 아름다운 꽃구경도 정말 좋았지만 그보다도 꽃물결처럼 움직이는 인파도 볼거리였습니다. 갖가지 모양새를 내고 웃고 떠들고 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그 속에는 이런 가족도 있었습니다. 40대 중반 50대쯤 보이는 3남매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나이 많으신 어머님을 휠 차에 태워 가지고 나왔는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어머님의 가슴에는 빨간 카네이션 꽃을 달고 있었는데. 자식들의 물음에 어머님은 말은 하지 못하고 마냥 머리만 끄덕입니다. 3남매는 화창한 5월의 뜨거운 햇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줄 곳 어머님 곁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고 순간 저는 지난 추억이 한눈에 안겨 왔습니다. 나에게도 나를 낳아 주고 키워준 부모님이 있었는데. 우리 어머님도 다리를 쓰지 못해 오랜 세월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하는데.. 어떤 모습이었을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북한에도 휠 차가 있었으면 내 형제들도 답답해하는 어머님을 모시고 대동강 유보도에도 나갔을 것이고 또 대성산 동물원에도 가 보았을 것인데, 휠 차가 없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침대를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부모님 곁에서 자주 돌봐 주지 못한 불효자식이 된 자책감으로 인해 눈이 촉촉 해 왔습니다. 나도 어머님이 생존에 있었다면 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카네이션을 달아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욱 저려 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자가 달려와 제 치마 자락을 건드리며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조릅니다. 아이스크림을 구입하려면 조금 걸어야 하거든요. 이 심부름 역시 이 할미의 몫이랍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도 서로 제 입에 맞는 걸로 고릅니다. 그래도 큰 손녀애가 어른스럽게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이모, 이모부의 아이스크림을 봉지에 넣었습니다.

며느리는 사진기의 셔터를 연속 누릅니다. 마치 사진사 같았습니다. 2시간 정도 꽃구경을 하고 저는 손자들과 함께 호수가로 나가 꽃배를 탔습니다. 5월의 화창한 햇볕과 호수 물이 어울려 유난히 반짝반짝 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어른들도 어느새 아이들의 동심세계로 돌아가 웃음 가득, 기쁨 가득합니다.

호수공원에서 나온 저는 가족과 함께 늦은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위해 '미송'이라고 쓴 음식점을 찾았습니다. 메뉴는 산 낙지 쇠고기 샤브샤브였습니다. 마냥 행복해 하는 내 가족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고향 생각을 해 봅니다.

소고기를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고향에서의 지나간 시절을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았습니다. 통일이 되면 내 형제들과 함께 황소 한 마리를 잡아 놓고 대동강 변에서 큰 잔치를 벌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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