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미사일발사로 인사하는 북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7.05.19
missile_tv_cast-620.jpg 북한이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한 1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설치된 TV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부터 20분 동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어느덧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의 달도 시간이 흘러 보름이 지났습니다. 벌판에는 모내기 준비를 위해 물결이 출렁이고 아카시아 꽃향이 코를 찌르네요. 매실꽃이 활짝 피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엄지손가락만한 파란 매실이 주렁주렁 달렸고 배나무 역시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앵두는 불그스레 익어 갑니다.

하루가 몰라보게 변해가는 자연과 더불어 텃밭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말로는 주말마다 건강과 운동으로 텃밭을 찾지만, 때로는 팔자에 없는 농사를 짓는다고 투정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습과 수확 때가 되면 뿌듯합니다.

지난 주말에도 벌써 때이른 뿌듯함을 홀로 느끼고 있는데 남편의 친구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통일교를 지나 민통선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통일대교를 지나 통일촌 부녀회 식당으로 갔습니다. 장단콩 된장찌개에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커피 잔을 들고 정자에 앉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우리 태극기와 북한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차 안에 있는 손전화기를 찾아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 따스한 햇살에 비추어 아주 밝게 보였습니다. 우리 태극기와 북한의 국기 사이는 불과 100m도 안돼 보였습니다.

남편과 친구 분은 북한이 로켓포를 발사했다는 아침 뉴스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저는 우리 태극기 보다 조금 더 높이 휘날리고 있는 북한의 국기를 바라보면서 지나간 추억들이 한 눈에 떠올랐습니다. 저기가 내 고향인데 빤히 바라보면서도 갈 수 없는 고향. 손을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펄럭이는 저 깃발을 한 때는 가정에 달고 또는 손에 들고 흔들기도 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친구의 스쳐 지나가듯이 한 얘기가 문뜩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통일이 된다고 하는데 진정 통일이 될까. 그러면 고향에 가보고 죽을 수 있을까. 순간 지금 눈에 보이는 저 가시철조망이 없어지고 평온하게 훨훨 날아가는 저 새처럼 자유롭게 고향으로 오고 갈 수 있고 형제들과도 자유롭게 전화통화도 하고 묵직하게 쌓인 가슴 아픈 사연을 몇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얘기 할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을까.

내 가족과 함께 부모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고 있는 환상이 영화의 화면처럼 떠오르기도 하네요. 남북이 서로 갈라져 70여 년. 어느 날 갑자기 가시철조망으로 3〮8 분계선이 생기고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부모 형제 가족들이 서로 생리별로 가슴 아픔을 겪고 있으며 생계를 위해 두만강을 넘어 제 3국을 거쳐 짐승보다도 못한 갖은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죽을 각오로 이곳 한국으로 온 우리 탈북자들.

배고픔과 어려운 생활고로 인해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이 되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큰 아픔을 겪고 있는데, 북한 오색기가 우리 태극기 보다 더 높으면 뭐 합니까. 그러면 위상이 더 올라 가는가요? 생각하면 할 수록 이해가 안 되네요.

요구 되는 것이 있으면 대화로 직접 솔직하게 “무엇이 필요하니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풀어야 하건만 새 정부가 들어선지 며칠이 안 된 이 시점 북한 당국은 로켓발사를 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마치 전쟁이라도 일으킬 듯이 협박 공갈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북한 당국은 진정 인민을 위함이라면 핵과 미사일을 포기 하고 전쟁 준비를 중지해야 합니다. 전쟁 준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인민생활에 돌린다면 목숨 걸고 고향을 탈출하는 탈북자들도 생기지 않을 것이며 남과 북한 국민들이 더는 비극적인 현실이 없어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고향으로 가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울에서 김춘애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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