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다문화 가족들의 감동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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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KBS 방송국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진행하는 '러브 인 아시아'라는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시청하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미국과 일본, 러시아 그리고 필리핀, 중국,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 대한민국과 멀리 떨어진 외국인 남녀가 국경을 넘어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결혼해 꿈과 사랑을 이어가는 다문화 가족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도 퇴근해 집에 오자마자 언제나 그러하던 것처럼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프로그램이 이미 시작한지 조금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말도 다르고 피부색과 생김새도 다른 '이리나'라는 여성이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남편과 아이와 함께 이리나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를 찾아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을 만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 나왔습니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장인, 장모는 자기 딸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위가 대견하고 예쁘다고 표현했고 장모는 기쁨과 행복으로 울다가도 웃고 또 눈물을 흘리다가도 웃음을 짓게 된다고 기쁨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장모는 또 자기 딸을 예뻐해 달라는 마음으로 사위를 무척 사랑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사위 장모라는 말과 시아버지 며느리라는 말이 예로부터 전해 오는 것이 남과 북한의 같은 공통어라고 합니다만 이 프로그램에서도 비록 말은 통하지 않으나 서로 변함없는 진심어린 사랑과 표현력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비록 피부색과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고,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진실한 마음이 서로 통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잠시 잠깐 내 고향 북한의 주민들과 우리 탈북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체 언제 우리 탈북자들도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찾아가 장인, 장모라는 말과 시어머니, 시아버지라는 말을 당당하게 부를 수 있으며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친척들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외국인들에 비하면 불과 몇 시간이면 갈수 있는 거리지만 갈 수 없는 곳에 두고 온 부모와 처자를 생각해 탈북자들은 하루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매사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특히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 날마저도 고향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픈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자가용 승용차로 불과 몇 시간이면 고향인 평양에 갈 수 있는 거리이건만 철조망으로 인해 갈 수 없는 것에 항상 마음이 아픕니다. 누군가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때로는 고향이 너무 멀어지는 듯한 생각으로 괴로운 마음과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며칠 전 작은 딸이 고향에 있는 제 동생, 이모의 전화를 받고는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정말 보고 싶은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모의 목소리를 들으니 아직 50이 안된 나이지만 70이 넘은 할머니 목소리 같았다고 했습니다.

제 동생은 남편과 아들이 없어진 뒤 딸과 함께 보위부에 끌려가 갖은 심문과 조사를 받고 나왔다고 합니다. 고향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누군가가 제 살점을 칼로 도려내는 아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동생과 전화를 하며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또 누가 도청을 할까 조마조마한 상황에서도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하다고 몇 번이고 말합니다.

저는 작년에 이곳 대한민국에 입국한 조카딸을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조카사위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장모와 전화 통화를 하며 '장모님, 빨리 이곳 대한민국으로 오세요'라는 말과 앓지 말고 오래 오래 살아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손자가 태어났다는 얘기를 말로 들으며 안아 볼 수도 없고 사진으로도 볼 수 없는 비극적인 전화 상봉에서 우리는 그저 눈물만 펑펑 하염없이 흘릴 뿐이었습니다.

언제면 우리 탈북자들도 고향에 계시는 장인, 장모 그리고 시부모님에게 떡 두꺼비 같은 손자들을 안겨 줄 수 있고 귀여운 며느리와 자식처럼 대견한 사위들과 식탁에 빙 둘러 모여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