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손녀와 함께 한 주말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7.08.11
tomato_picking-620.jpg 서울 서초구 내곡동 꽃초롱 자연학습장에서 어린이들이 토마토, 가지 등을 수확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즐거운 여름 방학이라 손녀 딸애가 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손녀 딸애에게 신나는 농촌체험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다른 집 애들과는 달리 저는 제가 직접 심고 가꾼 내 집 텃밭에서 손녀의 농촌체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곤충 벌레를 보고도 깜짝깜짝 놀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제김에 놀라 달아나기도 했지만 인차 재미있어 합니다.

우선 손녀와 함께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고추밭으로 갔습니다. 고추밭 가까이에 간 손녀는 팔뚝만하게 큰 고추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을 보더니 금방 벌레가 무섭다고 찡그렸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밝은 모습으로 고추를 신나게 따기 시작하네요. 고사리손으로 한 개 두 개 고추를 따던 손녀는 고추 한 개를 제 팔뚝에 비교해 보기도 하고 고추나무에 제 키를 비교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새 바구니에 한 가득 채웠습니다. 다음으로 토마토를 땄고 어른 팔뚝보다도 더 크고 굵은 보라색 가지도 땄습니다. 가지를 손에 들고는 이 할미에게 갑자기 수수께끼를 낼 터이니 맞춰 보라고 하네요. 시연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 이름을 대라고 합니다. 망설임 없이 스파게티라고 답했습니다.

틀렸다고 하네요. 시연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은 가지반찬이고 제 엄마는 아삭아삭한 고추를 좋아한다고 쉴 새 없이 쫑알쫑알 댑니다. 심심하지가 않았습니다만 어느새 손녀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줄줄이 흘러 내렸습니다. 혹 더위라도 먹을까 걱정이 되어 땀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손으로 이 할미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고추와 가지를 들고 중국집 가게를 운영하는 삼촌에게 가져다주자고 졸라대기도 합니다.

그냥 철없는 11살 개구쟁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마음속은 벌써 할미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견한 손녀의 모습에서 저는 잠깐 지나간 세월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는 채소가 많이 부족했거든요. 남새 상점에서 세대별로 도장을 찍어 가며 한 번에 작은 양의 채소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한창 양배추 철이라 남새 상점에도 양배추 한 차가 도착했습니다. 집 주변에서 뛰어 놀던 당시 10살이던 큰 딸애가 상점에 양배추 차가 도착 했다면서 넘어질듯이 달려갑니다. 뒤이어 딸애의 뒤를 따라 가보니 어느새 남새 상점에는 많은 사람들로 100m넘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행동이 빠른지 큰 딸은 맨 앞에서 10번째 서있었습니다. 제가 전표를 떼고 보니 집으로 간 줄로만 알았던 큰 딸애는 양배추를 받는 줄에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딸애의 덕분에 오랜 시간 걸리지 않고 양배추를 사 들고 집으로 왔거든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너무도 일찍 철이든 딸애의 잔등을 두드려 주었습니다.

저는 손녀의 잔등을 두드려 주면서 어쩌면 그 엄마의 딸이 아니라 할까, 혼자 말로 중얼 거렸습니다. 잠깐 땀을 식히고 손녀와 함께 옥수수를 땄습니다. 어쩌다가 올해 찰옥수수를 조금 심었는데 옥수수 한 대에 팔뚝만한 옥수수가 두 이삭씩 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자가 따로 없는 듯도 하네요. 바라보기만 해도 내 손으로 해 냈다고 생각을 하니 푸짐하고 배가 부르기도 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저녁 밥상에 손녀가 제일 좋아 한다는 가지 반찬에 고추에 고기를 두고 만든 장조림에 옥수수를 삶아 올려놓았습니다. 가족이 빙 둘러 앉은 밥상에서 손녀는 제 손으로 고추도 따고 옥수수 그리고 토마토도 땄고 가지도 직접 제 손으로 땄다고 자랑이 한창입니다. 뒤늦게 도착한 조카 손녀는 함께 가지 못한 아쉬움으로 떼를 쓰더니 눈물까지 보이네요.

찰옥수수를 손에 들고 먹으며 내 가족의 행복한 모습에서 내 고향에서는 시장에서 비싼 옥수수 몇 이삭을 구입해 나누어 먹었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여름철에는 옥수수 한 이삭이 귀하기도 했었거든요. 남편이 회사에서 10키로의 옥수수를 구입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 옥수수를 삶아 놓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가마채로 누가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옥수수를 먹을 것이라 많은 기대를 했었건만 옥수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안 우리 아이들은 서운함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잊을 수가 없네요. 손녀딸애와 함께 제 가 직접 심고 가꾼 텃밭에서 신나는 농촌체험학습과 더불어 좋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