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아이들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4.08.21
lake_park_fountain-305.jpg 경기도 일산호수공원에서 한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 저는 손녀들과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일산 호수공원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주말이고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큰 딸도 쉬는 날이라 일산 백병원에 입원한 친구 병문안을 다녀오기 위해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부지런히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안중에서 일산 백병원까지는 자가용 승용차로 1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친구와 함께 병문안을 마치고 일산 백병원 근방에 있는 ‘송담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두 손녀 역시 뜨끈한 추어탕에 나오는 국수를 먹으며 두 엄지손가락을 들어 맛이 최고라고 합니다. 친구들과 커피 한 잔하고는 헤어져 평택 쪽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로 몇 미터 달리던 중 저는 피뜩 유명한 일산 호수 공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달리던 차를 돌려 일산 호수 공원으로 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넓은 호수를 보니 마음이 시원했고 아직 채 지지 않은 흰색, 분홍색 연꽃을 보니 더더욱 마음이 상쾌했습니다. 개구쟁이 손녀들은 연꽃 씨를 보고는 연꽃위에 벌집이 있다고 말해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역시 애들이 있어야 웃을 일이 많아지나 봅니다.

산책하면서는 손녀가 쉴 새 없이 물어오는 꽃 이름과 나무 이름을 열심히 가르쳐 주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금잔화와 백일홍, 소나무와 버드나무 등 제가 모르는 나무도, 꽃들도 많아 아이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다 해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름이야 무엇이든 꽃들의 향기와 나뭇잎, 풀잎들의 향기가 솔솔 코를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그저 상쾌하고 마냥 즐거웠습니다.

호수 공원 산책로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로라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운동을 하느라 열심히 걷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침 주말이라 우리처럼 가족들과 함께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또는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산책하던 우리는 선인장 박물관에 들어갔습니다. 갖가지 이름 모를 선인장들을 구경하는 동안 애들은 놀이공원에서 미끄럼도 타고 모래 장난을 하느라 땀범벅이 됐습니다. 보통 2시간이면 호수 공원을 돌아본다고 하지만 우리는 3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한 바퀴를 다 돌았습니다.

일산 호수공원의 다양한 볼 거리, 쉴 거리, 놀 거리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노래하는 분수였습니다. 하늘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칠색 무지개를 만들며 내려오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황홀했습니다. 분수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는 노래 소리에 맞추어 음악이 커지면 분수대 물줄기의 높이도 따라서 올라가고 음악소리가 낮아지면 물줄기 역시 작아졌습니다. 손녀들은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탄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인근 백화점도 둘러봤습니다. 하루 종일 쏘다니느라 지칠 대로 지친 개구쟁이 손자들은 자가용 승용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푹 빠졌습니다. 잠꼬대까지 해가며 자는 8살짜리 손녀를 바라보며 저는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내 고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복한 새 삶을 지금 살고 있습니다만 이곳 한국생활도 세월이 흘러 벌써 12년이 됐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과연 내가 아직 북한에 살고 있다면 이런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북한에 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나는 어떤 모습일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과연 내 고향과 함께 살았던 동네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생각하다보면 자유가 없고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없는 내 고향 사람들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옵니다.

평양이 고향인 저는 1년에 한 번씩은 평양 동물원과 대동강, 만경대, 대성산 유원지를 다녀 볼 수 있었지만 지방 사람들은 평양 구경을 한 번 해보는 것을 평생소원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평양 구경 한 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북한의 지방 학생들은 유원지나 동물원 구경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답니다. 하기에 저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귀중한 금쪽같은 내 강아지 손자, 손녀들과 자주 이렇게 유원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면 우리 아이들을 키우던 지난날 생각에, 그리고 지금도 북한에서 평양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아이들 생각에 아픔이 가셔지지가 않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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