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구이 철에 가족과 함께한 주말 나들이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7-09-22
이메일
댓글
공유
인쇄
  • 인쇄
  • 공유
  • 댓글
  • 이메일
포항에서 열린 물회ㆍ전어 한마당잔치 행사장에 마련된 전어구이를 맛보는 관광객들.
포항에서 열린 물회ㆍ전어 한마당잔치 행사장에 마련된 전어구이를 맛보는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 삽교호를 다녀왔습니다. 8월 말부터 10월까지는 새우와 전어 철이거든요. 주말마다 특근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큰딸이 어쩌다가 지난 주말에는 쉰다고 하네요. 오랜 만에 어디를 다녀올까 하고 했었는데 마침 대하, 전어 철이라고 합니다. 워낙 미식가인 제 입에는 군침이 됩니다.

삽교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차도로는 조금 막히기도 했지만 벌써 눈앞에는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새우와 전어로 인해 설렜습니다. 안중에서 출발하면 20분이면 갈 거리이건만 우리는 40분이 소요되어서야 목적지인 삽교호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마다 자가용, 승용차들이 꽉 차 있어 한참을 걸려서야 주차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벌써 음식점마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타고 간 차들을 주차하는 동안 저는 남편과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과 함께 사람이 제일 많은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장님은 조금 기다리라고 하네요. 워낙 대식구라 넓은 좌석이 필요합니다. 짧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하, 소금구이를 생각하니 군침이 꿀꺽꿀꺽 넘어 갑니다. 어느새 주차를 한 남은 가족들이 왔고 순서가 되어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넓고 시원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새우 소금구이와 전어회를 시켰고 조개구이도 시켰습니다. 집 나갔던 며느리도 집으로 돌아온다던 전어구이 냄새가 온 삽교호를 뒤 흔들어 놓았습니다. 제일 크고 통통한 구운 전어 꼬리를 손에 들고 한입에 넣고 쭉 훑어 내자 전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위의 모습에 또 한번 우리 가족은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조개구이와 전어구이 그리고 새우 소금구이도 별맛이었지만 저에게는 전어회와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새우회가 별맛이었습니다. 아들이 직접 새우를 발라 빨간 초고추장에 찍어 제 입에 넣어 주기도 하네요. 이 세상에 제가 제일 행복한 엄마의 모습 그대로 현실이라는 것이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가족 회식을 마치고 삽교공원으로 갔습니다.

개구쟁이 손자 녀석들은 바이킹을 타면서 좋아라 어쩔 줄을 모르네요. 손자들이 놀이 기구를 타면서 즐기는 동안 저는 남편과 함께 사격장으로 갔습니다. 탄알 15발 중 13발을 명중했습니다. 욕심이 많은 저는 손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큰 인형을 목표로 정하고 2발을 사용했지만 탄알에 맞고도 좀처럼 땅에 떨어지지가 않네요.

남은 13발을 작은 목표물인 제주 하르방을 향해 조준했고 드디어 갖가지 색깔의 하르방이 줄줄이 땅에 떨어집니다. 선물도 듬뿍 받아 안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가을의 첫 여행을 만끽하며 맛있는 별미의 음식을 먹고 평택호를 향해 달렸습니다. 평택호에 도착해 시원하고 달콤한 팥빙수를 먹었습니다.

가족들이 평택호의 분수대에서 물놀이하며 놀고 있는 시간 저는 넓은 호숫가를 바라보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폰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지나온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내 고향에서는 새우철이 언제인지 전어철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았거든요. 평양이 고향인 저는 새우도 1년에 한번 겨우 먹어 볼 수가 있었고 전어 역시 1년 아니면 2년에 한 두 번 먹어 볼 수가 있었습니다만 그나마도 다른 사람들하고 조금 특이한 생활이기에 먹어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사는 주민들이라도 직접 잡는 어부가 아니면 그 흔한 조개나 전어, 새우 맛은 물론 구경도 할 수가 없거든요. 군복무기간 황해도 과일군에 있는 실탄사격장에서 중대가 우의 성적을 맞았다고 장교들만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대원들이 잠든 깊은 밤에 조개와 굴 구이를 해 본 경험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웃음이 나고 위생적으로는 안좋은 기억이었지만도 자갈위에 나란히 조개와 굴을 올려놓고 포차에서 금방 뽑은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 불을 붙여 구어 먹었지만 그때를 생각해 보아도 참 별맛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행복에 취에 즐거움을 만끽하는 내 가족들의 모습이 때로는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자주 해보게 됩니다. 정말 꿈만 같은 현실의 새 삶을 살고 있는 이곳 남한 생활에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