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에 온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긴 세월이지만 어찌 보면 엊그제 일만 같답니다. 저는 가끔 너무 빨리 흘러가는 오늘의 행복한 삶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봅니다.
북한과 중국 두 나라에서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이 되어 서로 소식을 모른 채 6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고, 그렇게 아픔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여러 나라를 거쳐 갈 때마다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길게 느껴졌던 그 세월을 모두 보내고 이곳 대한민국에 도착해 정착한지도 벌써 10년,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보면 수많은 추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아이들을 찾아 헤매던 일들, 그리고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어 짐승보다도 못한 모욕과 굴욕, 멸시받았던 일들, 그럼에도 내가 살아서 꼭 우리 아이들을 찾아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는 결심으로 탈출에 성공해 차디찬 두만강 물에 뛰어들어 빠른 물살과 함께 정처 없이 떠내려가던 그때 '이젠 죽었구나' 하던 절박한 심정, 마침내 고생 끝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인천공항에 내려 기쁨의 눈물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체험했던 지나간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처음에는 친척도 없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정착해 살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응을 잘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금치 못합니다.
저는 이곳 한국에 와서 부자가 됐습니다. 돈이 많아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곳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땅과 큰 아파트가 있어서 부자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땅도 없고, 큰 아파트 건물도 없지만 그보다도 몇 배 소중하고 귀중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 있답니다.
저는 아들이 귀한 가문의 딸부자 집 둘째로 태어나 두 딸을 출산했습니다. 내 딴에는 시댁 보란 듯이 아들을 꼭 낳아 당당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들을 출산했습니다만 세월을 잘 만나지 못한 탓인지 아님 제 팔자인지 너무도 부족한 것이 많은 북한 사회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부모님에게 투정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부모에게는 자식이 큰 재산이니 절대 그런 말과 표현을 하지 말라고 하시던 말씀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만 요즘엔 눈에 들어가도 아프지 않을 금쪽같은 내 손자들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친정어머니의 그 말뜻이 이해가 갑니다.
벌써 손자가 3명이 됐습니다. 태어난 지 2개월이 조금 지난 손녀는 제법 깔깔대며 웃습니다. 이 세상 모든 우리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저 역시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해주고 싶어도 해 주지 못한 한이 너무도 많습니다.
딸은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나는 손녀의 모습을 손전화기로 사진을 찍어 보내오고 있습니다. 옛날 속담이 아이들 자라는 모습은 눈에 띄어도 본인 스스로 늙는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말 세상에 부럼 없이 행복하게 자라는 손자들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눈에 밟혀 잠이 오지 않거든요.
모든 할머니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두 벌 자식이 예쁘다'는 속담이 하나 틀린 것이 없습니다. 때로는 친구들에게 손자 자랑을 하느라 밥도 많이 사주기도 했답니다. 그만큼 친구들의 부러움과 시샘으로 웃을 일도 많았고요.
저는 고향이 평양이다 보니 북한에서는 나름대로 최고급 시설을 갖춘 평양 산원에서 우리 아이 셋 모두를 출산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그 자체가 영광이라고 생각을 해 왔거든요.
그런데 이곳 대한민국에는 그 어디에나 평양 산원보다 훨씬 더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산부인과 병원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도시든 지방이든 산골이든 그 어디를 가도 좋은 시설이 갖추어진 산부인과 병원이 많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 구애받지 않고 아기를 출산하고 산후 조리까지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에서는 평양 산원에서 북한여성들이 궁궐과 같은 산원에서 아기를 근심 걱정 없이 출산할 수 있는 산원이라고 대내외적으로 많은 선전 사업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평양 산원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구애받지 않고 모두 아기를 출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양시에 거주하고 있는 여성들의 첫 아기만을 출산할 수 있고 지방여성들 중에는 특이한 세쌍둥이만 출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고향이 함북도인 제 친구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지방의 여성들은 돈이 없으면 조산원조차 찾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마을에 한 여성이 당장 아기를 출산하려고 진통을 겪고 있는데 그만 돈이 없어 조산원을 부르지 못하고 상식도 없는 남편이 가위로 탯줄을 잘랐다가 잘못됐다고 합니다.
북한여성들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현실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해가고 있습니다. 뜨끈뜨끈한 온수난방이 되는 집에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는 저는 추위에 땔감을 찾아 이곳저곳을 행방없이 헤매고 있을 고향의 여성들 생각에 한숨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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