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에서 느끼는 행복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3.11.21
sungnam_flea_market-305.jpg 경기도 성남시 한 아파트에 개설된 알뜰시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주 월요일은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알뜰 시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알뜰 시장은 며칠에 한 번씩 집 앞에 열리는 소규모 시장으로,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 가정주부들도 인근의 대형 실내 장마당을 두고도 알뜰 시장을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오늘도 알뜰 시장을 몇 바퀴 돌며 사람구경, 상품구경과 더불어 먹음직스럽고 탐스러운 갖가지 과일과 음식 구경도 했습니다. 제 손녀뿐만 아니라 아기들에게 제일 인기가 있는 음식은 감자를 꼬불꼬불 무늬처럼 오려 내서 긴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튀겨 소스를 뿌린 먹거리입니다.

제 손녀는 시장이 열리는 날마다 이 꼬챙이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줄로 알고 있기도 하답니다. 오늘도 저는 손녀의 손목을 꼭 잡고 시장구경에 푹 빠져 보았습니다. 한 젊은 청년은 유명한 공주 밤이 왔다고 시장이 떠들썩하게 광고합니다. 워낙 삶은 밤을 남다르게 좋아하는 저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속을 비비며 손녀의 손을 놓칠세라 꼭 잡고 그 청년 앞에 갔습니다.

가까이에 가보니 그 청년은 너무도 잘생겼습니다. 남다르게 큰 키에 늘씬한 몸매, 말투 또한 구수하기도 하고 재밌었습니다. 청년이 주는 크고 잘생긴 밤 한 알을 손에 받아 쥐며 뚫어지라 그 청년을 바라보니 사람 욕심이 많은 저로서는 딸이 한 명 더 있다면 사위 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밤을 두 됫박 구입하는데 덤으로 솥뚜껑 같은 큰 손으로 두 줌을 더 주면서 혹 고향이 이북이 아닌가하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스스럼없이 평양이라고 했습니다. 제 말을 들으며 반갑다고 하면서 정말 이북은 사람들이 살기 힘든지 다시 물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어렵게 왔다고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어렵고 힘들게 잘 오셨는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진심어린 말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워낙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 비록 짧은 시간에 한두 마디 나누면서 친해진 것이지만 저는 반가운 나머지 말린 조갯살과 말린 오징어를 더 구입했습니다. 덤도 듬뿍 받았고요.

덕분에 괜스레 기분이 조금 들떴는지 맞은편 생선 가게에서 오징어와 이면수도 구입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네 알뜰시장을 돌아보고 집에 돌아온 저는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매콤하고 달콤한 오징어 볶음과 말린 조갯살 조림에 새콤달콤한 도라지 무침까지, 푸짐한 저녁 식탁에 모여 앉아 맛있게 먹는 내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니 먹지 않아도 저절로 배가 불러옵니다.

며느리에게 보낼 반찬도 예쁘게 포장하며 저는 알뜰 시장에서 만난 젊은 청년과 있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새콤달콤한 도라지 무침이 특별히 맛있다고 부지런히 감탄을 하던 조카사위는 자식들 가까이에 와서 벅적 벅적하며 즐겁고 행복하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이모님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한마디 하기도 합니다.

조카사위에 또 조카 손자 녀석까지 곁에 있어 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합니다. 잠시 잠깐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언니도 이곳 한국에 온 딸이 행복한 가정을 두고 예쁜 공주까지 두고 새 삶을 살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 할까, 조카는 이제 한국에 온지 겨우 3년이 되어 옵니다.

조카는 이곳 한국에 와서 결혼해 예쁜 공주를 출산해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평양에는 두고 온 7살짜리 아들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예쁘고 좋은 옷을 딸에게 입히면서도, 좋은 장난감을 구입할 때마다 두고 온 아들생각으로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 아파하는 조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언제이면 두고 온 아들을 생각하는 한 점의 그늘이 없어질까, 지난날 제 자녀들과 이산가족이 아닌 이산가족으로 지내면서 가슴이 얼마나 쓰라렸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저는 마음이 더욱 아팠습니다.

외사촌들이 한 상에 모여 앉아 행복하게 웃으며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자니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내 고향에서는 모든 것이 열악하고 부족한 것으로 인해 친인, 친척이 내 집에 한번 오게 되면 불편해하고 식전에 빨리 가기를 원한 적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요. 한 번은 군인이었던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살림을 이사해 간 동생이 오랜만에 시어머니 환갑으로 평양에 올라오게 됐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도 제 결혼식에 보고는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한 10년 만에 보는 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따끈한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시동생이 빨리 시댁으로 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오늘날 저는 행복이 뭔지, 인생의 즐거움이 뭔지,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지를 뼛속으로 느끼며 그 날 일이 미안해집니다.

지금은 이렇게 집으로 조카도 오고 가족이 자주 모여 벅적벅적, 또 뽀글뽀글 들볶으며 사는 게 얼마나 큰 재미이고 즐거움이고 행복인지 모릅니다. 조카와 며느리에게 알뜰시장에서 구입한 삶은 밤과 반찬을 듬뿍 챙겨주는 것 또한 소소하게 다가오는 행복이라는 걸 고향에서는 차마 몰랐을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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