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장마당 폐쇄 소식에 '잠못이룬 밤'
김춘애
2008-12-19
얼마 전, 북한 장마당에 관한 소식이 남쪽 언론에 보도가 됐습니다.
북한에서 매일 서던 장마당이 없어지고
10일 장으로 개편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는 읽고 또 읽고, 밤엔 걱정이 되서 며칠 동안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식량 공급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서
매일 보던 장을 10일 한 번씩 서게 만든다면
주민들은 무얼 먹고 살며
돈은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 시작한 지 10년,
나아지지 않은 식량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주민들이 근근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장마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북쪽 사람들에게 장마당은 그냥 먹을거리를 사거나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주는 끈이고 터전입니다.
저는 다른 고향사람들과 마찬가지고 장마당 하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많습니다.
몰래 저녁 메뚜기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두부를 만들어 인민 반 주민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
저녁 8시가 되면 머리에 꽃 보자기를 쓰고
맞지도 않는 남편의 커다란 옷을 입고 숨어 다녔습니다.
또는 남 다 자는 새벽이나 밤에 평양시의 인접인 40. 50리길을 걸어 강서 장마당으로 가
집에 있는 작은 물건과 술이나 꽈배기, 강정을 넘겨다가 메뚜기장에서 팔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저만의 기억이 아니라,
제 주변 거의 모든 주민들의 생활이었습니다.
학교 교원들도 낮에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집에 있는 노인들이 만든 빵이나 꽈배기를 넘겨받아
저녁 시간에 장마당을 이용해 근근이 하루하루 연명해 갔습니다.
평양시 주민들도 이러했는데 지방 주민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교단에서 직장 현장에서 출퇴근 시간 지하철이나 버스. 궤도 차 안에서
빈혈로 쓰러지는 주민들도 너무 많았습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처음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장마당이란 말도 들어 보지 못했고 장사란 생각도 해 보지 못했던
그 시절엔 누구나 다 힘들었습니다.
2000년도에 제가 북송되어 동생 집에 잠깐 머물었습니다.
장사를 하면 국수라도 끓여 먹을 수 있지만
장사를 하루라도 그만 두면 온 식구가 국수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제는 어느 정도 장마당 운영이 궤도에 올랐고
주민들 속에서도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 돼있는데
이제 일일 장마당을 없애고 10일 장마당으로 바꾼다면
또 한 번의 큰 시련을 겪어야 할 고향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나 되야, 장사라도 맘 편히 하고 장마당에라도 맘대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겠는지요.
그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기자에게 질문하기
아래 양식을 작성하여 질문해 주십시오. 질문들은 승인후 게시됩니다. 곧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전체 질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