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50대에 되찾은 여성으로서의 당당함
김춘애
2008-11-07
얼마 전, 북한의 피복 공장에서 일하던 20대의 나이 어린 탈북 여성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저 같은 처녀애들 중에는 달거리도 못할 때가 많아요.
얼굴에 버짐이 피어 가면서 달거리도 못하고 다리가 퉁퉁 붓고
말이 아니었답니다.”
이 얘기는 이 탈북 여성 혼자만의 호소가 아니라
북한 여성들 전체의 호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남자들은
군에 입대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의무고,
여자애들은 또 여자들대로 무조건 당이 부르는 곳으로
집단 배치를 받게 됩니다.
또 이럴 때 가정환경이나 부모들의 뒷배경이 좋지 못 하면
더 열악하고 힘든 곳으로 가기 마련입니다.
평양방직 공장을 비롯한 각 지방에 있는 방직공장이나 피복공장,
심지어는 돌격대에까지 끌려 나가,
남자들과 똑같은 힘든 일을 해야 하고
기숙사 생활을 하며 3교대로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일을 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가 너무도 열악한 북한 사회에서
기숙사 단체 생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방직공장이나 피복공장에 배치 받으면 수공업적인 기계를 한사람이 몇 대씩
맡아 봐야 하고 때로는 하루에 12시간 16시간씩 일하는 것도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 남한에 와서 새로 접한 몇 가지 말들은
저를 놀라게 했고,
또 이런 열악한 생활을 하는 고향의 어린 처녀애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습니다.
바로, ‘생리 휴가’ ‘다이어트’ ‘출산 휴가’ 라는 세 가지 말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은 한 달에 한번 ‘생리 휴가’ 라는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름만 들어도 뭔지 아실 겁니다.
또 ‘다이어트’ 란 우리말로 하면 ‘살 까기’.
식생활이 개선돼 먹을 것 걱정 안하는 남쪽에선
여성들은 항상 몸무게 늘어 걱정이고 ‘살 까기’ 가 큰일입니다.
다음은 출산 휴가. 물론 아이를 낳은 여성이 휴가를 받아
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인들이 해산을 하면 남편들도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시작이긴 하지만,
남편의 출산 휴가도 남쪽에선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는 것이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해산의 진통을 남편과 함께 나눌 수 있고
든든하게 지켜주고 보살펴 주는 남편의 방조와 도움을 받으며
애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마 아이를 낳아본 어머니들은 잘 알겁니다.
제 둘째 딸은 남한에 와서 회사 기숙사 생활을 합니다.
둘째 딸이 집에서 떨어져 지내면서
저녁 일을 끝내고, 야근도 가끔 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이제 걱정을 하지 않아도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알아서
할 나이인데도, 저는 걱정이 많습니다.
평양 방직공장 옆에서 오랫동안 살아서..
합숙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잠자리와 먹는 문제 등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잔소리를 할 때면,
제 딸은 “어머니는.... 여기가 북한인가?” 하고 말하네요..
“모든 시설이 다 갖춰져 있어서 사소한 불편도 없으니
어머니 마음 푹 놓으세요″ 하고 딸이 오히려 저를 안심시키곤 합니다.
회사 사장님은 자주 기숙사에 들러
생활에 불편한 점에 대해 자주 물으며
특히 탈북자라고 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보여주고,
함께 생활하는 남한 언니들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하나하나 차근차근 친절하게
알려줘서 이제는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지난날 북한에서 40살 이전에 생리가 끊겨 여성이라는 생각을 잊은 지
오래 되었던 우리 탈북 여성들도
50이 넘어 60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성들이 설 자리가 있는 이곳 남한에서 당당한 자신감을 되찾고 있습니다.
저도 50대 중반이 되어 오지만
“나도 다시 여자가 되었다”라고 큰 소리로 자랑할 만큼의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당당한 자신감과
이 땅에서 북한 출신 여성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노력이
나중에 우리 북한 여성들이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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