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다정한 고향을 꿈꾸며

지난 주말, 친구와 함께 노량진 수산시장을 다녀왔습니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고 집에서 수산시장까지는 거의 1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이 노량진 수산시장이 서울에서 제일 크고 재미있는 시장 같습니다. 운동장만한 큰 시장 바닥에 정말 없는 것 없이 별의별 희귀한 동해 서해 남해 물고기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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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횟감으로 이름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펄펄 뛰고 있고 한국에서 제일 알아주는 솥뚜껑만한 영덕 게도 어기적어기적 살아 움직입니다. 민물장어, 조개, 젓갈, 미역, 김.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면 모든 지 다 있습니다.

우리는 장을 보러 왔는지 구경을 하러 왔는지 시장을 몇 바퀴 돌고 돌며 신이 났는데 그러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됐습니다. 저는 제일 큰 영덕 게 두 마리와 반짝반짝 빛나는 청어 5마리를 골라 쥐고 주인장과 흥정했습니다. 둘이서 두 배를 사겠으니 가격을 깎아 안 되겠느냐, 싸게 안 주면 사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았습니다. 젊고 익살 좋은 생선 가게 주인장이 저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생선을 조금 싸게 줬습니다. 청어는 배를 열어 소금에 절여놨다가 구멍탄 불에 구워먹어도 맛있고, 기름이 많아 간장에 매운 고추를 두고 조려도 맛있습니다.

이날 시장에 같이 간 친구는 고향이 시골이라서 북한에 있을 땐, 청어는 구경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노란 강냉이밥을 물에 말아 청어구이를 곁들여 먹던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친구가 이곳엔 청어는 널렸는데 노란 강냉이밥이 없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기도 하고 남편들의 흉도 보면서 지하철 역까지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일단, 지하철 전차에 오르자마자 앉을 자리부터 찾았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전철이나 버스를 타면 운동한다고 일부러 서서다니기도 했는데 이제는 차만 타면 앉을 자리부터 살펴보게 된다면서 이게 주책 이라고 서로 놀려줬습니다.

마침, 저만치 앉아 있던 군인 2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머님! 여기에 앉으십시오' 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하고 앞뒤 옆의 사람들을 둘러봤습니다.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한 게 맞더군요. 군인 두 명은 단정한 군모엔 함대마크가 달렸고 큰 키에 흰 눈처럼 눈이 부시게 하얀 해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양보해준 자리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곤 앉았는데, '내가 벌써 이렇게 늙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멋지게 군복을 차려입고 버스나 기차에서 노인들이나 얘기 엄마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줬는데 말입니다.

앞에 선 군인들에게 몇 살인가 물었습니다. 한 명은 20살, 한 명은 27살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학을 다니던 도중에 군에 입대했다고 지금은 휴가를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곳 남한의 군 복무 생활은 2년이 조금 넘습니다. 북한 군인들의 복무 기간에 비해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도, 휴가가 있다고 합니다.

북한군 복무 연한은 남자들은 무조건 10년. 여자는 5년, 여성 장교는 10년입니다. 제가 있던 미사일 부대 같은 기술 병종이나 특수 기술 병종들은 12년입니다. 18살 고등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해 30살, 31살이 돼야 제대가 되고 여기에 초기 복무가 있으면 35살 위급 장교와 꼭 같은 연령이 되어야 제대를 할 수 있답니다.

정말이지 18살 앳된 소년이 몸체보다도 큰 군복을 입고 땅에 닿는 총을 메고 군에 입대했다가, 수염이 시커먼 노총각이 되어야 제대가 되고 그것도 부모님이 있는 고향이 아니라.무더기 배치로 탄광이나 광산, 농촌으로 간답니다. 부모님들은 항상 어린 18살 아들의 모습만을 생각하며 기다리다가 막상 아이가 제대하고 나오면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군 장교가 되어 휴가를 받고 집에 갔을 때, '네가 정말 둘째냐?'라면서 이리 보고 저리 보던 놀란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안겨 옵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군대는 인민을 떠나 살 수 없다"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인민의 군대지만, 지금 북한의 군은 인민의 생명 재산을 뺏는 약탈자에 가깝습니다.

저도 경험이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지방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고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문으로 타지 못하고 사람들은 기차 창문으로 기어올랐습니다. 자리에 앉은 군인들은 창문 앞에서 담배나 돈을 주면 올려 주고 없다고 하면 창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들 한 번씩은 군인들에게 기가 차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언젠가 내 고향의 버스나 기차 안에서 담배나 돈을 내놓으라는 으름장 대신, '아버님 어머님 여기와 앉으세요' '어휴 고맙네' 이런 다정한 말들이 오고 갈 수 있을까요. 정이 오가는 화목한 고향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