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생각 평양 생각] 고향에서 걸려 온 전화
김춘애
2009-03-16
며칠 전, 이상한 국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상대방은 그저 저쪽에 있는 사람이 저를 찾고 있다면서
북쪽에 친척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일단 조심스럽게, 나를 찾는 사람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기다리던 전화가 있었기 때문인데,
이 사람은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전화번호를 찾아서 다시 전화를 해주겠다며 그냥 전화를 끓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끓고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서 일단 제 전화기 발신자 표시에 나타난 상대방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신호 몇 번 끝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니 따 추월라,’ 중국의 한족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사기 전화가 많다는데 사기당한 것 아닌가?
아니면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소식이 끓긴 고향에서 안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 것인가?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회사 업무로 한창 바쁜 시간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손전화기를 들여다보니 며칠 전에 왔던 바로 그 전화번호였습니다.
이번엔 자신을 중국의 연변 사는 누구라고 소개하면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번호와 이름 석 자중 마지막 글자만을 알려 주면서 빨리 전화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끓자마자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고향에서 오는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거의 1년 동안 소식이 끊겨,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반가운 전화였습니다. 너무도 반가워 보고 싶고 그리웠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잘 있는가?’라고 ‘별일은 없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은 놀란 듯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난 기간, 전화는 보위부 검열에 걸려 빼앗겼고 새로운 전화기를 샀다고 했습니다. 모두 잘 있다는 소식,
그리고 요즘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선거와 미국, 남조선 합동 훈련 때문에 정세가 긴장하여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밖에 없는 언니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몇 마디, 서로 안부를 전해 듣는 것으로 전화 통화는 끝이 났습니다. 전화 통화 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9월의 어느 날, 딸을 찾아 국경 연선으로 떠나는 저에게 통행증 없이 떠나면 고생이 많겠다고 바꾼 돈 20원을 저의 손에 꼭 쥐여 주던 사랑하는 나의 언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이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언니의 머리엔 벌써 흰서리가 내렸겠지요.
어린 시절 언니가 좋은 옷을 입으면 나도 좋은 옷을 입겠다고 교복을 벗어 던지고 옷장에서 언니의 옷을 몰래 입어보다 싸움 꽤나 했습니다. 그저 언니 것이라면 다 좋아 보여 샘 부리던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시절엔 잘 사는 언니가 배고픈 동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서운해서 언니에게 자주 다니질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다 행복한 시절이 아닌가 하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저는 다른 동생들보다 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답니다.
언니와 비록 4년 차이라지만 좋은 것이 있으면 먼저 챙겨 주었고 제가 사춘기 시절 대학에 안 가겠다고 할 때에도 아버지에게 된 욕을 먹고 쫓겨났을 때에도 부모님이 다자는 깊은 밤까지 자지 않고 기다려 대문을 열어 주었고 언제나 저의 마음을 헤아려 감싸주던 언니였습니다. 그런 언니가 큰 병으로 앓고 있다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작년 5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도 지켜 주지 못했는데, 또 이러다 언니의 마지막 길도 못 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잠도 오지 않습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가도 기차를 타고 가도 우리 언니 집까지 2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인데, 갈 수도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이런 것이 생리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민족인 남과 북이 갈라져 이렇게 전화로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는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생리별은 우리 아이들 세대에는 꼭 끝이나 길, 그래서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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