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꽃 없는 내 고향

2009-05-04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아름다움을 서로 다투며 피었던 봄철의 절정기는 지나가고 벌써 꽃잎들은 하나 둘 떨어집니다.

벌써 5월. 남쪽은 5월에 행사가 많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모두 들어 있고 그래서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5월을 맞이하는 저는 첫사랑을 시작한 아가씨 마냥 마음이 설레입니다. 어버이날, 우리 손녀가 예쁘고 고운 옷을 입고 아장아장 이 할미 앞으로 걸어와 앞가슴에 꽃을 달아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벌써 설렌다는 말입니다.

그저 표현력이 부족한 저로서는 행복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조금은 서운하네요. 며칠 전 저녁에도 이제 겨우 말을 배우는 손녀와 전화 통화를 하며 수없이 웃고 또 웃었습니다. ‘시연아, 할미다, 시연이 밥 먹었어?’ ‘응’ ‘시연이 우유 먹었어? ‘응’ ‘시연이 할미 보고 싶어?’ ‘응’ ‘시연이 할미 안보고 싶어?’ ‘응.’ 그저 엄마와 ‘응’ 아니면 이제 놀이방에 가서 배운 ‘예’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어린 손녀지만 저는 그렇게 신통할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의 목걸이를 보고는 가지 목걸이와 똑같다는 둥 할미의 손목에는 손 목걸이가 있는데 저는 왜 없냐는 둥 말은 아직 트이지 않았지만 자기의 생각과 행동은 분명한 이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합니다.

제 인생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오늘이 있기에 그런 험난하고 힘들었던 고통마저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행복은 절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기에 저와 우리 아이들은 낯 선 이곳 남한 땅에 와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이 좋은 세월이 정처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울 때면 너무도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허무하지 않나 하고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 온 우리 아이들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제 힘으로 넘어선 배짱이 있습니다.

어제, 저는 친구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길가에 핀 분홍색 철쭉을 한참이나 바라봤습니다. 정말이지 고향에서는 오늘처럼 한가하게 꽃이나 보고 앉아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늘과 땅처럼 엄청나게 차이가 큰 이 두 현실이 비록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엄연한 인간의 삶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꽃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저를 보고 친구는 말했습니다.

그래도 평양엔 거리에 꽃을 심고 가꿔 보기 좋았지만, 자기 고향엔 1년 12달 365일 꽃을 구경하기 힘들었다고 말입니다. 추운 지방이라서 과일 나무도 없었답니다. 그리 흔한 들국화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추운 지방이라도 반생을 살아온 고향인데 하물며 한 송이의 꽃구경도 못하고 살아 왔다는 얘기는 말도 안됩니다. 산에 흔하디흔한 돌배나무 한 그루 없었을 수는 없습니다.

친구의 고향에 꽃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살아가는 데 고난이 컸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는 뜻일 겁니다. 아마도 지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내 고향의 여성들, 주부들의 삶도 꽃 한번 돌아볼 여유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제 삶이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고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고생들이 오늘날 이 행복을 가져다주었듯 여러분의 삶에도 반드시 그런 날이 있으리라는 말, 꼭 하고 싶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이런 말도 모두 거짓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와 우리 식구, 그리고 많은 역경을 딛고 남쪽에 살고 있는 많은 탈북자들이 이 말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냅시다.

서울에서 김춘애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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