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내 아들이 살아온 경력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마치도 밖에서 내리는 소낙비와 같이 말입니다. 어린 마음에도 생존을 위해 기차역과 공원과 장마당.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전전하면서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들을 주워 먹었다는 생동한 말을 듣는 순간 한 장의 그림이 머릿속을 획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없이 비닐 방막을 몸에 감고 추운 겨울에도 밖에서 잠을 자곤 했다는 이야기, 우리가 북조선에서 이곳 남쪽에 대한 세뇌교육을 받았던 현실 그대를 제 아들이 겪었던 것입니다.
제 아들은 노동 교화소에서 아버지가 죽은 뒤 홀로 버려져 이 엄마를 다시 만날 때까지 7년을 생존을 위해 살았습니다. 한창 공부를 할 나이고 또 이 엄마 품에서 응석을 부리며 뛰어놀아야 할 너무도 어린 나이에 엄마와 헤어져 그 긴 세월을 살아남으려고 안 해 본 일이 없이 살아온 아들. 부모를 잘 못 만난 탓으로 이렇게 어린 마음에 크나큰 상처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엄마로서 자식들과 함께 이곳 남한에 올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더없는 행복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 속에 많은 고생은 했으리라 생각은 해왔지만, 이렇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차마 엄마로서 듣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했다니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간리 9호소에서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주는 밥이 아닌 밥을 얻어먹었고 매일 매일 죽어나가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꼈다고 했고 또 어린 나이에 벌써 자유가 얼마나 그립고 좋은가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제 아들뿐 아니라 지금도 내 고향에서는 아들이 겪어온 삶을 그대로 사는 많은 아이가 있습니다.
언제인가 독 풀죽으로 거의 죽어가는 아들을 병원에 업고 갈 때 무력부에 있는 한 고급 군관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머님, 이 아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려서 이렇게 고생한 아이들은 꼭 훌륭하게 자라더라고요,'
아들 자랑이 아니라 저의 아들은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정말 늠름하게 잘 자라 줬습니다. 대견한 아들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답니다. 지금도 역시 내 고향 북한에서 못해준 사랑과 애정을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앞으로도 내가 살아 있는 한 이런 고생 속에서 다시 찾은 우리 가족이기에 저는 더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내 고향이 개방되고 통일이 되는 그때를 위한 한 가지 다짐을 합니다. 내 고향 북한이 개방되고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어린이 복지관과 노인 복지관을 설립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여 부모 없는 아이들과 어린이들, 노인들을 돌보는 것으로 내 아들에게 지은 죄를 씻으려 합니다.
통일은 멀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아, 그날까지 건강하게 꼭 기다려 주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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